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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기러기 아빠, 한국 교육의 쓸쓸한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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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경훈 기자]"인생의 끝 닿는 곳 무엇과 같은가 날던 기러기 눈 진흙 밟듯 하구나 진흙 위엔 우연한 발자국 남기고 기러기는 또 동서로 날아가네"

소동파(蘇東坡)가 온갖 풍상과 곡절 속에서 짧은 세상 살다가는 기러기를 우리네 인생에 비유한 글귀입니다.
기러기는 이처럼 문학작품이나 노래에서 인간사에 대한 비유로 자주 이름을 올립니다. 또 이별의 아픔이나 부부애를 상징하는 단골소재로도 기러기가 자주 거론되는걸 보면 선인들의 기러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러기목 오리과의 철새인 기러기는 짝이 죽으면 홀로 여생을 마치고, 산에 불이나면 품은 새끼와 함께 타죽을 정도로 유별난 부부 금실과 자식 사랑으로 유명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요. 요즘 기러기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비유는 뭐니뭐니해도 '기러기 아빠'가 아닐까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과 아내를 이역만리 땅으로 유학보내고 혼자 남아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학비 보내느라 등골이 휘도록 일하는 중년의 가장을 빗대어 만든 조어입니다.

이런 기러기 아빠가 최근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연예인들의 평생 소원이라는 검색어 순위에 올랐나했더니 그 이유가 슬픔을 넘어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지난주 발표된 '기러기 아빠의 건강관련 삶의 질 예측모형 구축'이란 논문에 따르면 외국에 자녀와 부인을 보내고 한국에 남아 돈 벌면서 혼자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들 대부분이 심각한 영양불량 상태와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홀로 밥상을 마주하는 게 싫어서 인스턴트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허전함과 고독을 잊기 위해 마신 술과 야근이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 원인이었습니다.

평균 418만원. 기러기 아빠들이 유학간 자녀와 아내를 위해 보내주는 월평균 송금액이라고 합니다. 현재 유학중인 초ㆍ중ㆍ고생이 2만명을 훌쩍 넘는다는 통계만 봐도 처량한 외기러기같은 아빠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있습니다. 뻔한 수입에서 90% 이상 보내주고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아빠들의 그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은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도 험난할 게 뻔한 고행의 길을 기꺼이 걷고자 하는 '예비' 기러기 아빠들은 주위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지금 세태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우골탑'도 부족해 가족해체까지 무릎쓴 기러기 아빠로 업그레이드 된 비정상적인 교육열로 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해 10조원이 넘는 돈이 자식들 교육비로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의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교육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에 대한 성찰이 먼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평사낙안(平沙落雁)'. 글이나 문장이 매끄럽게 잘 마무리 됐음을 표현하는 말이라는데 '기러기가 편평한 모래밭에 내려앉는 모습'이란 뜻입니다. 기러기 아빠들의 고단한 삶이 기러기가 모래사장에 내려앉듯 평온해질 수 있길 바랍니다만 여전히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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