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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和와 폭력...영혼의 샴쌍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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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우리는 빛났다. 이웃들의 불행에 어떻게 처신해야하는지, 예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우리들이 자랑스럽다. '경이로운 일본인'만큼이나 우리는 영웅이다. 불행한 일본 땅에 누구보다 앞서 달려 갔고, 구호품을 보냈고, 일본인보다 먼저 헌금을 모았다. 이런 우리가 서방인들에게 '이상한 한국인'일 수 있다.

금모으기를 하고, 수십, 수백만명이 모여 광장을 붉게 물들이는 '악마'의 물결로 굽이치는 모습이 두려울 수도 있다. 매운 고추장에 더 매운 푸른 고추를 찍어먹으며 이마에 힘줄 돋도록 쉽게 흥분하고, 벌컥벌컥 화를 내고, 성질 급하고, 아무데서나 시비를 걸고, 기분 내키면 거리에서도 고성방가를 일삼는 모순에 찬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정 많고, 따뜻하고, 포용하고, 소박하고, 울고, 웃고, 지지고 볶으며 살아간다는 걸 안다.불행한 이웃에게는 댓가를 바라지 않고 도울 준비가 돼 있다는 걸 안다. 서릿발 가득한 벌판을 맨발로 걸어도 손 잡아줄 친구가 있으면 모든 것을 잃어도 충분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걸 안다. 절망이 때로 눈부신 것은 삶의 근원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란 걸 안다.

우리와 일본에겐 청산할 빚이 남아 있다. 그 빚은 양국의 관계를 어둡하게 하는 요인이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사며,독도문제며, 교과서 문제들...우리는 항상 일본이 진심어린 반성을 해주길 기대해왔다. 그 기대가 무너지고 나서 우리는 일본과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높다란 장벽을 쌓고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불행에 빠진 일본에 우리는 '빚' 청산을 유보했다.

'이런 우리를...!'
우리들이 먼저 우리를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조그만 모임에만 나가도 '경이로운 일본인'은 단연 최고의 화제다. 재앙 앞에서 침착한 일본인들에 '부럽다'는 상찬의 말들이 넘친다. 그것이 몹시 불편하다.상찬만으로 끝난다면 갖지 않아도 될 불편이다. 누군가가 "우리도 일본인처럼 할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할 때가 그렇다. 그 반문은 자기 비하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경이로운 일본인'앞에 왜소해지는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왜소하게 만들 때가 더 힘겹다.지식인들의 천박한 자기진단을 받아들이기가 힘겹다. 해법도 없고, 처방도 없이 오인으로 가득찬 우리 중의 우리가 힘겹다. 일본의 불행앞에 잠시 빚도, 과거사도 내려놓은 채 우리를 바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힘겹다.

우리는 우리만이 아니라 일본마저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일본 어린이 교육 헌장 1장 1절의 내용이다. 일본인은 그들을 지배하는 정신을 '와(和)'로 표현한다. 와는 서로 알맞은 위치에 자리잡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천황으로부터 봉건영주, 무사계급, 자영농과 노비에 이르기까지 위치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물론 '와'를 해쳐서는 안 된다. 반면 이탈하거나 제몫을 다하지 않는(弱) 사람에게는 '이지메'라는 집단적인 형벌이 가해진다.

간혹 기업이 망할 경우 경영자는 '죄송하다'고 수없이 머리를 조아린다든지 심한 경우 책임을 짊어지고 자결하는 것도 '와'와 '약'에서 기인한다.약한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 한다.따라서 '와'와 '폭력(이지메)'은 영혼의 샴쌍둥이면서도 지배이데올리기다. 결코 경이롭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우리가 일본인들을 칭송해 마지 않는 사무라이 정신도 그렇다. 사무라이는 자영농을 수탈하는 부랑아집단에서 유래한다. 이 부랑아들은 영주나 토호들의 조세징수권을 대신하거나 전쟁을 수행하는 무사집단으로 변천을 거듭했다. 일본인 입장에서도 그리 자랑스러워할만한 것이 못 된다. 알고 보면 일본인의 정신도 우리처럼 모순으로 차 있다.

우리는 일본인들의 질서에 온갖 찬사를 쓰나미처럼 쏟아내고 있다. 그 반대도 있다. 심지어는 어느 유력 일간지가 지진 당시 '일본 침몰'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가 내부에서조차 심하게 문책당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일본들의 침착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의 과도한 상찬과 상찬의 이면에 도사린 비하가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반면 우리가 보여준 온정에 대한 자부도 어느 만큼은 합당할 수 있다. 우리의 온정과 협력은 일본 열도를 감동시켰다. 진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에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 눈물로 얼룩진 그들을 감싸 안기 위해 과거사를 초월한 우정을 보여줬다.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보라색 손수건을 쓰고 과거사 청산을 외치던 정신대 할머니들마저 추모집회로 바꿨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온정'의 정신이 일본인들의 침착성만큼이나 빛나는 부분이다. 온정에 생색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정서, 그 정서로부터 끓어오르는 힘의 원천을 우리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15년 동안 영국 '더 타임스' 한국특파원을 지낸 '마이클 브린'의 '한국인을 말한다'에 나오는 '契主'이야기는 곰곰히 새길만하다.그가 구리에서 겪은 일이다. 어느 날 계주가 돈을 챙겨 사라졌다. 허자 계원들이 계주의 집에 나타나 살림을 때려부수고 온갖 난리를 쳤다.그리고 얼마 후 계주를 잡아다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 다음날 분노와 폭력에 사로잡혔던 계원들이 계주의 집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모두들 한아름 음식과 술을 가져왔다.몸져 누운 계주에게 음식도 해 먹이고, 한편으론 욕설도 퍼부었다.

"일어나서 내 돈도 갚고 너도 살아야 하지 않느냐 ?"고.

브린은 계원들이 계주를 경찰서에 끌고 가거나 법에 맡기지 않는 것에 의아해 했다. 그는 끝내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겐 아주 흔한 방식이다. 그것이 화가 냈을 때도 살아내는 우리의 방식이란 걸 알리 없다.일본인들 같으면 어땠을까 ? 우리가 가지고 있는 '和'의 방식은 일본인들의 '와(和)와 이지메처럼 이중적이고 모순덩어리다.우리에겐 아들을 살인한 범인을 용서해달라고 탄원하는 어머니가 있고, 원수의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의 얘기도 있다. 우리는 그처럼 징글맞게 살아간다. 한'恨'을 품고도 살아간다. 왜 ? 함께 살기 위해서...그런 우리를 오인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으로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큰 가슴을 주라.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 칼린 자브란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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