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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내가 기억하는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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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혜숙 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의혹 사건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메가톤급 충격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당신은 기자니까 정확히 알 것 아니냐, 뭐가 팩트냐"며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들이다.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철학과 소신도 그러거니와 언론에 비친 선한 인상과 차분한 말투, 공손한 모습은 딱히 그와 악연이 없는 한 호감을 갖게 한다. 기자역시 지난해 1월 대권주자로서 인천시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를 본 느낌이 그러했다.
여성 팬이 많은 것도 그의 노력의 한 산물일 것이다. 그런 그가 다른 것도 아니고 여성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니 요즘 말로 "헐~"이 저절로 나온다.

차라리 그 흔한 뇌물사건에 연루됐더라면 수백억원을 챙겼을지언정 국민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덜 했을 것이다. "정치인을 어떻게 믿냐"는 선배 기자의 말은 역시나 진리인 것인가.

기자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정치인을 꼽으라면 며칠 전 작고한 최기선 전 인천시장이다. 1995년 초대 민선시장에 이어 2002년까지 8년간 인천시장을 지낸 그는 지금의 인천이 있기까지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임기내 인천을 광역시로 승격하고, 분규가 끊이지 않던 사학재단 선인학원을 시립화했고, 정부를 설득해 바다를 매립해서 지금의 송도국제도시를 만들었다.
송도 정보화도시(Tele port), 인천국제공항(Air port), 인천항(Sea port)을 개발·발전시키는 인천 트라이포트(Tri-port) 전략은 오늘날 인천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 조례도 없는 상황에서 최 전 시장의 장례를 시민장으로 치르자며 지역사회가 한목소리를 낸 것만 봐도 그의 '공(功)'을 짐작케한다.

2002년 한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2005년 대법원 무죄 판결)로 기소됐을 때 자신의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던 기자들에게 들어와서 술 한잔 하자던 그가 기억난다.

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였지만 정작 뇌물의 진실을 듣지 못했던 나는 기자로서 오기가 발동한 탓에 그 후로도 두세차례 최 전 시장의 집을 찾았고,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뇌물사건의 실체를 캐기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고뇌에 동화됐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얼마 지나 퇴임 당일, 차 한잔 하자며 시장 집무실로 부르더니 "오늘이 (임기)마지막인데, 박기자 얼굴은 보고 가야지, 하하하"하며 웃으시더니 "그동안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웠고, 기자생활 멋지게 하길 바란다"고 했다. 수년이 흘러 출판기념회 때 먼 발치서 본, 암 투병으로 쇠약해진 그의 모습이 내 마지막 기억이다.

그가 어떤 정치인이었는지는, 그 짧은 인연의 잣대로 평가하기란 무리다. 다만 그는 기자의 기억속에 가장 소탈했고 인간미 있던 정치인이었으며,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안 전 지사가 준 충격 때문인지, 고인이 된 안타까움에도 최 전 시장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음에 참으로 감사한다.

9일 출판기념회를 갖는 유정복 인천시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내가 가진 지위와 명예가 내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한 사회와 국민의 것이라는 생각에, 나의 재능을 바쳐 보답해야 가치있는 삶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된다"고 밝혔다.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지위와 명예가 어떻게 얻어지는 지를 깨닫지 못한 한 정치인의 말로가 씁쓸한 지금이다.




박혜숙 기자 hsp066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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