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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사면초가(四面楚歌)'와 '패왕별희(覇王別姬)'

최종수정 2017.11.29 11:42 기사입력 2017.11.29 11:42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 항우(項羽)와 한 고조 유방(劉邦)이 마지막 결전인 해하(垓下) 전투를 앞두고 있을때다. 유방의 지장 한신이 해하에서 항우의 초군을 둘러싸고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다.

10달 넘게 전투가 이어지며 패색이 짙었던 초군 진영에는 울음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고향 노래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앞다퉈 도망치는 군사들이 부지기수였다. 중국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둔 항우 역시 사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이미 초나라가 한나라의 손에 떨어졌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결별의 주연을 연다.

비분강개한 항우가 술잔을 들고 시를 읊고 또 읊는다. 이 시가 유명한 '해하가(垓下歌)'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구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항우가 술잔을 들고 시를 읊는 이 장면은 경극 패왕별희(覇王別姬)의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극적인 장면이다. 추(?)는 항우가 평생을 함께 하며 사랑했던 말 이름이고 우는 총애하던 애첩 우희(虞姬)를 뜻한다. 유방이 한때 미인으로 소문난 우희를 원했다는 점을 들어 항우는 항복해 목숨을 보전하라고 권한다. 항우의 노래가 끝난 뒤 우희가 노래를 이어 받는다.
"한나라 기병이 초땅을 덮고 구슬픈 초나라 노래가 사방에서 들리는데 대왕은 의기조차 잃었으니 나 혼자 구차히 살아 무엇하리."

노래를 마친 뒤 우희는 항우의 칼을 뽑아 자결한다. 항우는 사력을 다해 초군에게서 탈출한다. 결국 오강(烏江)에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고 판단한 항우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어 자살한다.

주인을 잃은 항우의 말 추도 한번 구슬피 울고 강물에 몸을 던진다. 나아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뒤에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을 일컬어 사면초가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다. 모두 자결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만큼 더 극적이면서도 비장하다.

그렇다면 항우의 죽음으로 유방은 천하를 통일 할 수 있었을까? 항우가 이토록 비극적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반한 세력들은 오히려 결집하게 됐다. 한 고조 유방은 그 후 오랫동안 이들과 싸워야 했다.

최근 재계를 대하는 시선은 한결같다. 사면이 의혹과 의심의 눈초리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재계를 '적폐'의 주범으로 간주하고 사법부 역시 이에 발을 맞추고 있다. 시민단체와 여론도 기업들을 향해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니 손을 대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한다. 기업 치고 소송중이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익을 많이 내면 장사 잘했다는 칭찬 대신 협력사와 임직원의 희생 때문이라는 얘기가 먼저다. 다시 한나라 얘기로 돌아가보자. 결국 한신은 해하 전투의 공적으로 초왕에 봉해진다. 한신도 결국 역적죄로 몰려 초왕에서 물러난다. 한신의 마지막 한마디가 걸작이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쳐부수고 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구나."

우리가 흔히 "팽 당했다"고 하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유래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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