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인 안정행정부 시절부터 4년 넘게 안전처의 탄생과 소멸을 지켜본 기자의 입장에서 이번 안전처의 폐지는 공과를 따져보기 전에 '전 정부의 흔적지우기'식으로 해체가 결정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짐작건대 안전처 직원들은 그동안 내내 무기와 갑옷도 없이 전쟁터에 내몰린 병사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실제 출범 초기 안전처 직원들의 입에선 "정부 각 부처들이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안전처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만난 한 안전처 직원은 "우리가 없어지니 이제 정부 각 부처들은 사고ㆍ재난이 생겼을 때 누구 핑계를 댈까 궁금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안전처가 명실상부한 안전 컨트롤타워로 자리잡기 위해선 출범 초기에 법률적 권한과 예산 확보가 필수였다. 또 이른 시일 내에 재난ㆍ사고 대응에 있어 손발 노릇을 하는 지자체들과 연계를 강화하는 등 시스템을 정비했어야 했다.
문득 세월호 참사 당일 4월16일 오후에 느꼈던 황망함이 다시 떠오른다. 오전까지만 해도 "별일 없을 것"이라는 보도에 안심하고 있다가 오후 갑자기 뒤바뀐 실종자 통계에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모든 국민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당시 진도군청 브리핑룸과 팽목항, 맹골수로를 오가며 13일을 보냈다. 진도는 오열로 가득 찬 거대한 영안실이었고, 대한민국 전체가 장례식장이었다.
또 다시 세월호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안전처는 사라졌지만, 문재인 정부에서도 누군가는 불철주야 오로지 '국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즘도 가뭄, 산불, 장마 등 연이은 자연재난에 대응하느라 3개월간 집에 한 번도 못 들어가 '이혼 당하게 생겼다'고 호소하는 재난 대응 부서 공무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 중 일부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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