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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열의 건축외전⑪]가을날의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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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 행사

G20이 끝나는 날 저녁,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열렸다. 한국에 모인 세계 정상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추(歸趨)가 주목되는 가운데,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개막식은 사람들을 TV 앞에 모여들게 했다. 중국의 아시아체전은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세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13억 중국인들의 꿈이 모여 있다. 그 꿈을 염원하듯 역대 최고, 최대의 수식어를 동반한 개막식이 거행됐다. 45개국에서 참가한 만 사천여명의 선수단은 역대 최다 참가이며, 20조원의 투자비용은 다가올 2012년 런던올림픽 예산을 훌쩍 넘는 수치이다. 중국은 자본주의시장 개방이후 급성장한 경제력을 과시하듯 사치스러운 행사를 선보였다. 42억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모든 나라에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는듯하다.
울주 오디세이, 일반 음악회와 달리 산정상의 억새평원에 무대가 마련됐다. 피아노 선율은 간월재에 부는 바람을 타고 마음속 깊이 가을을 전한다.

울주 오디세이, 일반 음악회와 달리 산정상의 억새평원에 무대가 마련됐다. 피아노 선율은 간월재에 부는 바람을 타고 마음속 깊이 가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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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최고, 최대가 아니라 ‘최초’였다. 광저우는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으로 스타디움(Stadium)을 벗어난 ‘수상 개막식'을 선보였다. 거대한 강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 광저우의 특징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개막식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주강(珠江)의 작은 섬 하이신사(海心沙)에서 ‘물, 생명의 기원’을 주제로 펼쳐졌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큰 강을 끼고 있는 수변도시답게 하이신사 섬에 수상무대를 꾸몄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큰 강을 끼고 있는 수변도시답게 하이신사 섬에 수상무대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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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신 ‘난하이’가 이끄는 45척의 배는 참가국의 숫자를 의미한다. 9.3㎞를 항해하여 나란히 섬으로 향하는 장면도 장관이었지만, 천 삼백여명의 학생들이 동원된 와이어액션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LED 전광판의 산수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빨간 꽃잎의 군무 또한 아름다웠다. 그리고 밤하늘을 낮으로 바꾸어 놓은 불꽃 조명 쇼는 중국의 무한한 저력을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빛으로 만든 환상

인공 섬 건너편에는 광저우의 위상을 표현하듯 610m 높이의 칸톤 타워(Canton Tower, 광저우 TV 타워)가 우뚝 서있다. 전망대가 설치된 타워는 아시안게임 이전에 운영되는 것을 목표로 지어졌다. 꽈배기처럼 나선형 튜브로 짜여 진 형태는 네덜란드 IBA 건축사무소(Information Based Architecture)와 영국에 본사를 둔 엔지니어회사 아랍(Arup)이 공동 제안한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회사들이 참여한 국제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됐고, 지금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 828m)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구조물을 배경으로 화려한 불꽃 조명 쇼가 열렸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구조물을 배경으로 화려한 불꽃 조명 쇼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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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의 랜드마크(Landmark)가 된 타워를 배경으로, 수상의 불꽃 무대는 어떠한 행사보다 많은 치장을 했다. 하늘을 찌르는 타워와 그 주변의 고층빌딩들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났다. 화려한 단장(丹粧)을 한 배들은 주강(珠江) 위를 맴돌며 군무를 추고, 빛으로 만든 환상은 개막식 내내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개막식의 하이라이트인 성화 점화식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폭죽에 불을 붙였다.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한 행사는 밤 12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은 조명과 불꽃으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환상을 만들었다. 가을 한때 TV를 통해서 본 유쾌한 환상은 그렇게 끝났다.

광저우 야경, 칸톤 타워에서 바라본 광저우 도시의 야경이다. 현대식 건물뿐만 아니라 하이신사 섬 주변의 수변 공간 까지 조명으로 경관을 만들었다.

광저우 야경, 칸톤 타워에서 바라본 광저우 도시의 야경이다. 현대식 건물뿐만 아니라 하이신사 섬 주변의 수변 공간 까지 조명으로 경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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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최대, 최초의 행사가 끝나고 나서, 일전에 중국에서 보았던 류산지에(劉三姐) 공연이 생각났다. 2005년, 뒤늦은 여름휴가를 중국 광시성(廣西省) 양슈오(陽朔) 지방으로 갔었다. 마침 그곳을 여행한 시점이 늦가을이었고, 야외에서 행사가 진행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수상무대라는 특징은 두 공연을 얼른 떠올리게 만들었다.

무대의 기원

양슈오(陽朔)는 카르스트(Karst) 지형의 산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풍광(風光)으로 유명한 곳이다. 힘들게 찾아간 그곳은 봉긋 솟은 봉우리들이 무려 3만6천개나 펼쳐져 있었다. 언덕에 자욱이 깔린 안개 사이로 근두운을 타고 손오공이 날아 올 것만 같다. “중국 제일의 경치는 ‘구이린(桂林)’이고, 구이린 제일의 경치는 ‘양슈오(陽朔)’다.” 라는 말처럼 그 곳의 절경은 인간계가 아닌 선계(仙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슈오(陽朔), 석회암질의 물에 녹기 쉬운 암석이 세월에 녹아 절경을 만들었다. 리강(?江)에 반사되는 봉우리가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양슈오(陽朔), 석회암질의 물에 녹기 쉬운 암석이 세월에 녹아 절경을 만들었다. 리강(?江)에 반사되는 봉우리가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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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슈오(陽朔)는 봉우리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강을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하고, 시골 농가에서 식사와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곳이다. 저녁이 되면 300m 정도의 낮은 산 정상에 올라 산수화 같은 석양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의 풍경은 주변의 모든 산과 석양과 고요함을 혼자 가졌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불빛이 없는 밤에 이루어졌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조명에 비췬 수많은 봉우리들은 배경이 됐고, 강물 위의 대나무 보트(Boat)들은 무대로 변신했다. 이렇게 연출된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야외 오페라라인 "류산지에(劉三姐)" 공연은 나를 또 다른 환상으로 데려가 주었다.

양슈오(陽朔), 고요하고 아름다운 저녁 무렵의 석양을 보기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양슈오(陽朔), 고요하고 아름다운 저녁 무렵의 석양을 보기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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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원어민의 노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환상의 무대는 첨단장비로 무장한 오페라극장에서 전문배우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감동을 전한다. 일반적인 프로시니엄(Proscenium, 무대와 관객사이에 벽이 있는 무대 양식) 무대가 주는 엄숙한 공간의 갑갑한 기분은 없다. 어둠에 쌓인 대자연의 호방한 공간만이 존재한다. 그 공간을 찢고 나오는 산가(山歌)는 정적을 깬다. 마치 무대의 기원을 보는 것 같다. 원시인들의 축제에 시공간을 넘어 참가한 듯 공연 내내 그들의 노래에 빠졌다.

류산지에(劉三姐) 공연, 어두워지면 수변의 봉우리에 조명이 비춰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어낸다.

류산지에(劉三姐) 공연, 어두워지면 수변의 봉우리에 조명이 비춰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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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실제 자연을 배경으로, 그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주제로, 마을주민들이 배우가 되어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산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야외공연 ‘류산지에(劉三姐)’는 추앙족(族)의 전설에 나오는 아가씨의 이름으로 산가(山歌)의 명수였다고 한다. 맑고 고요한 리강의 수변에 마련된 관람석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구조물이지만, 5년여에 걸친 준비와 제작기간을 투자한 장예모(張藝謀) 감독의 연출은 이를 무마시킨다.

류산지에(劉三姐) 공연, 물 위의 보트에서 이루어지는 수상공연이다. 어둠속에서 빛을 이용하여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류산지에(劉三姐) 공연, 물 위의 보트에서 이루어지는 수상공연이다. 어둠속에서 빛을 이용하여 극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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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위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는 600여명이 배우가 출연한다. 이는 양슈오(陽朔) 원주민의 대부분이 참여한 것이다. 인구 1만 명의 작은 농촌마을은 국제적인 관광문화도시로 변모됐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소득은 중국인의 평균보다 높다. 그리고 변방의 소수민족이라는 자괴감(自愧感)이 자부심으로 변하는 더 큰 소득을 얻었다. 한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져야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현대식 무대를 뛰어넘는 반전(反轉)을 보여준 류산지에(劉三姐) 공연, 이와 비교해 한국의 도시들이 벌리고 있는 축제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가을날의 찬가

언제부터인가 불기 시작한 한국의 지역문화축제 바람은, 지금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다. 지자체별로 경쟁하듯 생겨난 행사는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대부분 그 지역 특산물을 사고파는 장이서고, 빠지지 않고 연예인초청행사가 이뤄진다. 결과에 따라 예산조정이 되어 유명무실한 행사도 많다. 문화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상대적으로 자금이 여유로운 곳은 상징적인 타워나 대규모 광장, 화원 등을 조성한다. 그것도 빨리빨리 진행되어 실제로 가보면 조잡스러운데도 있다. 도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축제가 광저우처럼 양적 물량공세를 해야 이목을 끄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양슈오(陽朔)의 성공 이유를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풍광, 마을주민의 직접적인 참여, 그리고 전래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든 차별화된 무대를 꼽는다. 자신들이 가진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주민들의 참여와 잘 짜여 진 기획은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울주 오디세이,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억새 숲길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울주 오디세이,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억새 숲길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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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수도로 알려진 공업도시 울산에서 이색적인 문화축제가 열렸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간월재 정상에서 음악회가 열린 것이다. 간월재는 간월산과 신불산을 잇는 고갯마루인데, 흔히 ‘신불산 억새평원’이라 부른다. 고개 주변이 억새 군락지인데, 산길을 오르다보면 상대적으로 평평한 지대가 나타난다. 이 억새를 보기위해 초가을인 9월부터 사람들은 붐빈다. 이곳에서 음악회를 연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일반 공연장이 아닌 산의 억새밭에서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피아노 선율이라.
다른 지역과 달리 축제준비에 전문기획자가 영입되어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됐다. 누구의 의견인지, 이런 멋스런 생각을 한 사람을 위해 칭찬을 하고 싶다. 공업도시의 답답한 이미지를 풍류(風流)를 아는 도시로 바꾸는 쉽고 간단한 비책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반전처럼 극적인 음악제를 위해 400㎏의 피아노가 해체되어 수레로 옮겨져 왔다. 2시간의 조율 시간동안 하늘에서 그 지역의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 회원들이 축하비행을 했다. 은빛 억새가 춤추고, 쑥부쟁이가 도란거리는 해발 1,000m 고지의 가을 산에서 펼쳐진 연주는 낭만과 환상을 선사했다. 그리고 마지막 퍼포먼스(Performance)인 800개의 전통 연은 하나하나 이어져 모두의 소망을 안고 높게 용솟음쳤다.

울주 오디세이, 간월재 등산로에서 듣는 소리꾼 송도영씨의 청아한 목소리는 간월산과 신불산의 깊은 골짜기까지 울렸다.

울주 오디세이, 간월재 등산로에서 듣는 소리꾼 송도영씨의 청아한 목소리는 간월산과 신불산의 깊은 골짜기까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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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에는 피아니스트 임동창, 대금 이생강, 동편제 전인삼, 재즈 색소폰 이정식, 소리명창 송도영씨가 억새밭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산도 문화와 접속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류산지에(劉三姐)는 2003년 10월 첫 공연 이래 1천3백회 이상 공연됐고, 5백만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다. 중국 오지의 도시들도 변하고 있다. 도시의 경쟁력이 도시면적이나 경제력, 인구에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한지역의 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거창하게 도시문화를 논하기 전에 마을에서 소소한 동네잔치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가까운 일본의 지역마다 있는 축제인 ‘마쯔리(祭り)’가 부럽다. 그리고 지역 풍광을 이용한 류산지에(劉三姐)의 무대가 부럽다. 신불산 간월재의 조그만 무대는 어떻게 만들어야하나 자못 궁금하다. 건축의 범위를 넓혀보자. 어떠한 건물을 지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지우자. 가을날의 찬가를 위한 무대를 꿈꿔보자.

사진 출처
울주 오디세이 : 울주문화예술회관 www.uljuart.com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 www.gz2010.cn
광저우 야경 : www.flickr.com




양승열 painter_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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