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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바람 없는' 제주도에서 생긴 일

최종수정 2017.07.12 13:38 기사입력 2017.07.12 13:38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바람 많기로 유명한 제주도에도 바람이 없던 해가 있었다. 2015년이 그랬다. 기상청 자료로도 근거가 남아있다. 제주도 안에서도 바람이 강하다고 소문난 성산 지역의 그 해 평균 풍속은 2.9m/s였다. 최근 6년치만 봐도 2015년을 빼곤 3.0m/s 밑이었던 적이 없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이 지역 풍속은 평균 3.3m/s를 유지하고 있다.

 

잔잔한 바람을 누구나 반기진 않았다. 곤란한 처지에 빠진 이들도 있었다. 제주 곳곳에 자리 잡은 풍력발전소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바람의 세기는 '블레이드'라고 불리는 풍력발전기 날개의 회전 횟수와 비례한다. 회전량이 늘어날수록 전력도 많이 생산된다. 반대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만큼 손해다. 2015년은 제주도 풍력발전사업자들에겐 돌이키고 싶지 않은 해였다. 그 해 발전량은 평년보다 10% 정도 떨어졌다. 영업이익도 예상치에 못 미쳤다.

 

두달 전 제주 출장길에 들렀던 한 풍력발전소는 제주도민 2만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직원은 "바람이 얼마나 불지는 예측하기 힘든 변수"라고 했다. 풍력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력은 전체 전력의 보조역할을 하는 정도라 여태껏 말썽은 없었다.

 

그러나 2만가구가 온전히 풍력발전 전력에 의존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15년처럼 바람이 찾아오지 않는 해가 또 온다면? 요즘처럼 에어컨 없이 견디기 힘든 날씨가 계속된다면? 제주도에서 전력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 불안전한 에너지는 핵(核) 뿐만이 아니다. 바람 드문 시기의 풍력발전, 장마철의 태양광발전 역시 전력소비자들에겐 또 다른 의미의 '불안전한 에너지'인 셈이다.

 

"먼 길을 가장 빨리 가는 수단이 비행기인데도 사고가 나면 한꺼번에 죽을지 모른다는 거죠. 그래서 비행기는 버리고 느려 터져도 죽을 위험 없는 자전거 타고 가자는 거 아닙니까." 사석에서 만난 한 에너지업체 임원은 '탈(脫)원전-신재생에너지 확산' 정책을 이렇게 빗대 말했다.

지난해 겨울 '판도라'라는 영화가 화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보고나서 "눈물을 흘렸다"던 재난영화로 유명하다.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진도 7.0을 견디는 설계와 이중삼중으로 설치된 냉각밸브 안전장치, 수소 제거장치 때문에 영화처럼 우리나라 원전은 폭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전 두산중공업 창원본사의 터빈공장에 견학을 간적이 있다. 두산중공업은 국내에서 유일한 발전소 주설비 업체다. 공장 한편엔 아직 날개도 못 붙인 거대한 터빈 몸통이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가장자리에 부착된 '신고리 5호기'라는 이름표가 초라해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임원은 "요즘 공장을 찾는 사람들마다 '저 터빈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본다"며 "그래도 기술력 있는 대기업은 해외시장이 있어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문제는 협력사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 최대 시장인 인도만 해도 모디 총리 정권의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정책 탓에 협력사나 부품을 현지에서 구해야한다"며 "국내 협력사들이 최대위기를 맞았다"고 털어놨다. 신고리 5호기 터빈에 붙여야 했던 수천개의 날개만 해도 협력사들이 공급하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 20%'라는 목표 끄트머리엔 이렇게 가늠조차 못할 기회비용이 숨어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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