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가 물었다. "'귀여운 웃음 보조개 짓고, 고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니, 흰 것으로 광채를 내도다!'하니 무슨 말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회사후소(繪事後素)로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가 맨 뒤로 온다는 말씀이지요?"
공자와 자하는 시에 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자하는 위나라 사람이라 위나라 노래의 가사(衛風)를 인용했습니다. 이 노래는 시경에 석인(碩人ㆍ늘씬한 여인)으로 소개된 시입니다. 고운 눈이 또렷하니 흰색 때문에 더 빛난다는 구절에 대해 물은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공자는 원래 그림은 흰색이 마지막으로 받쳐줘야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야. 아하, 흰색은 그러니까 예절같은 것이군요. 공자는 원리만 말했는데, 자하는 그것의 응용까지 설명해 낸 것이지요. 그러니까 공자가 '너랑은 시를 논할 수 있겠군'이라 칭찬해 준 것입니다. 화장발이 멋지려면 마무리를 흰 분으로 잘 정리해야 한다. 색이 없는 흰색은 모든 색을 갖추게 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예의는 그래야 한다.
이것을 주자는 '그림 그리기 이전에 흰 바탕이 먼저 있어야 한다'를 풀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주자시대에는 수묵화가 유행이었기에 흰 바탕 위에 그리는 게 중요했고, 공자시대에는 종이가 없었고 피륙이나 대나무 위에 그렸기에 채색을 먼저하고 그 마지막에 흰색을 쓸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물감 그림을 그릴 때 흰 물감과 검은 물감으로 음영과 양감을 주는 이치와 비슷하겠지요. 흰색이 바탕을 이루는 점에서는 같지만, 원바탕이냐 아니면 마무리냐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그리 작은 것은 아닙니다. '바탕이 희어야 한다는 것'은 타고난 것에 대한 칭찬이 되기 쉽지만 '흰 것의 마무리'는 소박함이 인격을 완성하며 그 하얀 영혼이 삶의 끝까지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자의 뜻보다 공자의 뜻이 훨씬 좋습니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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