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기생이었고 아버지는 미천한 화인(畵人)으로 삶이 곤궁했기에 마음에 울화가 쌓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가슴 속에 내 혼을 격동시키는 큰 붓이 늘 있었다네.
나는 이미 오래전 돌아갔지만, 그대들 동시대 시인인 윤한로(1956~)를 좋아하네. 등단 34년 만에 낸 시집에 나에 관한 시가 두어 편 있지. "잡덤불 속/욱대기며 떰 떰/나는 수놈/시뿌듬, 멱을 틀고/그대는 암놈/ 춥진 않을까/우리 둘/꼬락서니 하며!/저기 무주구천동/최북이 최칠칠님께 그려달래라/지게작대기 잡은 참 찍찍"(윤한로의 '메추라기 사랑노래')이라고 쓴 시가 마음에 드네. 어린 날 아이들이 메추라기라고 놀렸을 때, 어머니에게 달려가 물었지. "대체 메추라기가 어떻게 생겼길래 나보고들 저래요?" 그러자 어머니 말씀. "음. 딱 너처럼 생겼어." 나중에 알고보니 꿩처럼 생겼는데 누르검추레한 털들은 부숭하여 볼품이 없고 멀리 날지도 못하는 그런 새였더군. 모양 뿐만 아니라 신세 또한 나를 닮았으니, 나를 그리는 심정으로 이 새를 그렸지. 사람들은 어찌 하여 메추라기를 그리 열심히 그리는가 놀려대면서 나를 최메추라기라 부르더군.
나는 평생 암 메추라기를 못 만나 홀로 죽었지만, 그림 속엔 늘 짝이 있다네. 내가 하늘을 보며 생각을 할 동안 가만히 조를 쪼고 있는 저 암컷. 메추라기 그림 속에는 나의 가정과 나의 행복과 나의 로망이 다 들어있다네. 추워지는 가을날 국화꽃 향기 맡으며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이 거기 메추라기로 환생해 다소곳이 머물고 있다네. 어느 멋진 가을날의 고즈넉한 들녘을 노니는 나를 봤는가. 그윽하고 만족스러운 내 눈빛과, 내 짝의 두리번거리는 귀여운 눈빛을 유심히 본 사람이면, 나를 기인이니 괴물이니 조선의 미친 화가 고흐라고 하지 않을 걸세.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