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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발견]나는 조선의 반 고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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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의 메추라기 그림.

최북의 메추라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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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거니와 나, 최북은 고흐가 아니라네. 스스로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는 풍설(風說) 하나만으로, 나보다 100년 뒤에 태어난 네덜란드 화가에 비견되는 걸 나는 바라지 않는다네. 나의 예술과 삶 모두가, 기행과 기이함과 취생몽사로 읽히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네. 당대의 사람들이 나를 광생(狂生)이라 부른 건, 아무도 나의 내면 속으로 걸어들어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저 짐작으로 찧은 입방아일 뿐이라네.

어머니는 기생이었고 아버지는 미천한 화인(畵人)으로 삶이 곤궁했기에 마음에 울화가 쌓이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가슴 속에 내 혼을 격동시키는 큰 붓이 늘 있었다네.
신광수(1712~1775)는 나와 동갑나기로, 내 뜻을 알았다네. 그는 내게 '눈 내리는 강(雪江圖)'를 그려달라 했는데, 내 그림을 보고는 "왜 파교 고산의 눈보라이며 맹처사 임처사만 그리는가"라고 따지는 시를 썼지. 파교는 중국 섬서성의 다리이고 고산은 항주에 있는 서호의 산이니, 중국의 풍경이 아닌가. 맹처사는 맹호연이고 임처사는 임포이니, 다 중국 사람들 아닌가. 왜 조선사람이 중국을 그려대고 있느냐고 따지는 말이었지. 나는 이 말에 몹시 부끄러워졌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네. "待爾同汎桃花水(대이동범도화수) 更畵春山雪花紙(경화춘산설화지)그대와 함께 복사꽃강에 배 띄울 날 기다리네, 그때 눈꽃도화지에 조선의 봄산을 다시 그려주게." 난 이 아름다운 시를 잊지 못하지. 진경산수에 제대로 뜻을 둔 건 이 시의 충고 때문이라네.

나는 이미 오래전 돌아갔지만, 그대들 동시대 시인인 윤한로(1956~)를 좋아하네. 등단 34년 만에 낸 시집에 나에 관한 시가 두어 편 있지. "잡덤불 속/욱대기며 떰 떰/나는 수놈/시뿌듬, 멱을 틀고/그대는 암놈/ 춥진 않을까/우리 둘/꼬락서니 하며!/저기 무주구천동/최북이 최칠칠님께 그려달래라/지게작대기 잡은 참 찍찍"(윤한로의 '메추라기 사랑노래')이라고 쓴 시가 마음에 드네. 어린 날 아이들이 메추라기라고 놀렸을 때, 어머니에게 달려가 물었지. "대체 메추라기가 어떻게 생겼길래 나보고들 저래요?" 그러자 어머니 말씀. "음. 딱 너처럼 생겼어." 나중에 알고보니 꿩처럼 생겼는데 누르검추레한 털들은 부숭하여 볼품이 없고 멀리 날지도 못하는 그런 새였더군. 모양 뿐만 아니라 신세 또한 나를 닮았으니, 나를 그리는 심정으로 이 새를 그렸지. 사람들은 어찌 하여 메추라기를 그리 열심히 그리는가 놀려대면서 나를 최메추라기라 부르더군.

나는 평생 암 메추라기를 못 만나 홀로 죽었지만, 그림 속엔 늘 짝이 있다네. 내가 하늘을 보며 생각을 할 동안 가만히 조를 쪼고 있는 저 암컷. 메추라기 그림 속에는 나의 가정과 나의 행복과 나의 로망이 다 들어있다네. 추워지는 가을날 국화꽃 향기 맡으며 지켜주고 싶었던 사람이 거기 메추라기로 환생해 다소곳이 머물고 있다네. 어느 멋진 가을날의 고즈넉한 들녘을 노니는 나를 봤는가. 그윽하고 만족스러운 내 눈빛과, 내 짝의 두리번거리는 귀여운 눈빛을 유심히 본 사람이면, 나를 기인이니 괴물이니 조선의 미친 화가 고흐라고 하지 않을 걸세.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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