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가 붙인 호(號)인 호생관(毫生館)은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이 아니다. 그렇게 궁상과 자조(自嘲)를 일삼았던 사람이 아니다. 나는 조선에서도 다행히 좋은 시대에 태어나 화인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군주는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비교적 열려 있었고, 나 같은 신분이라도 재능만 있으면 사람들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네 가지의 탄생방식으로 나뉘는데, 모태에서 태어나는 태생(胎生), 알에서 나는 난생(卵生), 습지에서 생겨나는 습생(濕生), 그리고 번데기에서 우화하는 화생(化生)이 그것이다. 동기창은 이것을 말한 뒤, 아마도 부처는 화가의 붓끝에서 생겨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즉 정운붕의 솜씨를 극찬한 것이다. 그림이 불교라는 큰 종교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조물주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니 이보다 더 통괘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나도, 그림을 통해 메추라기의 생명을 만들어내고, 호접의 생명을 만들어내며, 꽃과 산수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호생(毫生)의 진정한 뜻은, 조선의 진경(眞景)을 담아, 죽은 중국산수가 아닌 우리 산수를 살려내겠다는 의욕이다. 생명력을 담아내는 붓이 꿈틀거리는 집이 바로 호생관이다. 나는 조선 산수와 조선생물들의 조물주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지, 붓끝으로 연명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단호히 손을 내저었다. 처음에 회유하던 그는, 갑자기 칼을 꺼내 이 일을 마무리 짓지 않으면 눈을 베어 다시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만들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붓을 들어 원치 않은 그림을 그려서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두 눈을 살리기 위해서, 내 그림이 아닌 그림을 도둑질해 팔았으니, 그 중의 한 눈은 처벌해야겠습니다. 남은 한 눈으로, 양심과 뜻에 어긋나지 않는 그림만 그리려 합니다." 이렇게 말한 뒤 한 눈을 붓 뒤로 찔렀다. 화인이라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았겠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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