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물이 되는 민(民)은 1,000만여명이 참석한 촛불광장으로 상징되고 있다. 촛불은 작고 따뜻하고 소박하지만 그저 그런 물이 아니다. 2016년 10월29일부터 밝혀졌던 촛불은 깊고 거대한 바다다. 세상의 모든 물들이 흘러흘러 바다로 가는 것처럼 우리 사는 사회가 살 만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촛불바다를 만들어 낸 것이다. 웅덩이를 만들 수는 있지만 누구도 바다를 만들 수는 없다. 도랑물 길을 낼 수는 있지만 누구도 바닷물의 흐름을 마음대로 돌릴 수는 없다. 누구도 지시하거나 강권하지 않았음에도, 오랜 세월 사람 살기 힘든 세상에서 부딪치며 살아 온 이들이 스스로 광장을 채우며 촛불의 바다를 만들고 있다.
멀리서 보면 바다는 그냥 하나의 큰물이지만 바다 안에는 작은 흙부스러기, 커다란 돌덩이, 온갖 종류의 물풀에서부터 각종 바다생명들이 숨 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생명작용을 힘으로 바다는 전 지구를 에워싸며 흐른다. 광장의 촛불도 그러하다. 멀리서 보면 탄핵과 퇴진을 외치는 하나의 거대한 촛불행렬이지만 그 안에는 정규직도 있고, 비정규직도 있고, 공무원도 있고, 소상공인들도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유모차를 타고 나온 아기들도, 학생들도, 청년들도, 전업주부들도 함께한다. 그들 각자의 삶의 색깔과 무게가 다르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사실상 최초로 국민탄핵을 실현시키는 거대한 바다가 되어 흐르고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촛불 때 있었던 경남 24살 청년의 자유발언은 빠른 속도로 퍼져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박근혜가 퇴진해도 우리 삶이 달라질까요?…산재신청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습니다. 새로 취직했지만 세금 떼고 월급120. 방세에 식비에 교통비를 제외하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10만원…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결혼해서 어떻게 방을 구하고, 가정을 꾸리고 할지 꿈도 꿀 수 없습니다…친구들 중 사업 하며 잘 사는 친구도 있지만 결코 그렇게 잘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 같이 해고 위험 없이 열심히 일하고 일한 대가만큼 받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랍니다.” 청년은 질문을 했지만 실은 촛불바다가 흘러갈 길을 만들고 있었다.
바다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들의 ‘살아 있음’을 떼어낼 수 없듯이, 촛불의 바다 역시 그러하다. 촛불바다 안에 빛나고 있는 하나하나 촛불들의 ‘살아 있음’이 온전할 때에만 촛불은 그 위에 떠 있는 배를 지켜주는 잔잔한 바다가 될 수 있다. 행여 검찰개혁, 재벌개혁, 선거제도 개혁, 교육개혁 등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없이 촛불의 바다가 배의 순항을 허(許)할 것이라는 꿈을 꾸는 자가 있다면 ‘군주민수(君舟民水)’의 교훈은 2017년 새해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