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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칼럼] 품격 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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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대 중반의 김씨는 요즘 거의 멘붕 상태이다. 그토록 지지하고 믿었던 사람의 추악한 맨얼굴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끝도 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진실은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모든 믿음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은 그렇다 치자. 탐욕으로 물든 그런 사기꾼 같은 여인네들이야 지금도 어디에나 수두룩하게 있을 것이었다. 고도성장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 물질 만능주의와 분단의 굴절된 역사가 그런 유의 인간들을 이 땅에 수도 없이 생산해 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만은 아니길 빌었다. 말하자면 김씨야말로 그녀의 콘크리트 지지층이었던 것이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변함없는 그의 신념이기도 했다.
소년기 청년기를 온통 박정희의 그늘 아래서 자랐고, 그분이 가르쳐주는 대로,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총화단결’과 ‘조국근대화’에 앞장 서서 베트남 전쟁과 중동 건설 현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그런 신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장발단속에 툭하면 계엄령이다, 비상사태다, 긴급조치다 하며 간이 덜컹 떨어지게 할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나마 잘 살게 된 것은 모두 그분 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그리하여 그분의 따님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데에도 군말없이 동의했던 것이다. 아니, 동의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앞장섰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 앞에 서 있는 그녀는 너무나 초라해졌다. 그녀만 초라해진 것이 아니라 그녀를 믿고 목청껏 떠들어내었던 자신의 세대, 자신의 삶도 함께 초라해졌다. 그토록 당당했던 자존심이 함꺼번에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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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품격 있는 일생을 살아가고 싶어 한다. 품격 있게 나이 들고 품격 있게 늙어가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소망일 것이다. 품격 있는 삶은 품격 있는 사회에서 나온다. 비천한 사회에서는 모두가 비천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비천하게 늙어가게 마련이다.

독재 정권은 그 자체로도 나쁜 것이지만 인간의 품성을 망가뜨리게 한다는 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다. 우리는 지금 그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고 있다. 최순실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면 그 누구도 명예롭다거나 품격이 있다거나 하는 얼굴이 아니다. 그 모습에서는 어디 하나 지성은 고사하고, 정직하고 성실하며, 최소한의 자존심, 최소한 남에 대한 배려나 수치심 같은 품격 있는 인간의 모습은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에 줄기찬 거짓말과 파렴치와 뻔뻔스러움과 탐욕, 거만한 이기심과 남을 지배하려는 망가진 의지만이 보일 뿐이다. 어쩌면 그 얼굴이야말로 무한 경쟁과 반칙을 종용하던 고도성장, ‘하면 된다’는 천박한 군사독재 문화가 만들어놓은 추악한 우리들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에 보면 매력적인 한 남성이 등장한다. 그 남자는 당시 서구인의 눈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식민지 치하 조선의 이름없는 망명객이었다. 그런데 님 웨일즈는 그 남자의 모습과 태도에서 뜻하지 않게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몇 차례 만나는 동안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허름한 차림새에도 불구하고 기품을 잃지 않은 태도에서 그녀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가 바로 김산으로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 장지락선생이다.

당시 조국을 잃고 먼 이국에서 풍찬노숙 독립을 꿈꾸며 살아갔던 우리 선조들 중에는 그런 품성과 인품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상해 임시정부에 가면 벽에 걸린 흑백사진에서 그런 얼굴들을 쉽사리 찾아볼 수가 있다.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박정희 시대의 그림자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수많은 젊은이들은 이제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 갈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박정희 유신 독재의 잔당인 김기춘을 비롯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 도사리고 있는 구태부터 말끔히 청소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를 이어온 낡은 껍질부터 벗어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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