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새롭게 밝혀진 기억의 비밀…단기 기억이 없어도 장기 기억은 살아 있다?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기존의 기억 이론을 단번에 뒤집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영화 '메멘토' 스틸컷

사진=영화 '메멘토' 스틸컷

AD
원본보기 아이콘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 상실증을 갖고 있다. 그는 기억을 대신하기 위해 메모와 사진, 문신을 활용하여 중요한 정보를 최대한 기록해두려고 하지만, 맥락 없이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정보에 의존한 기록들은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그를 이끌어간다.
인간에게 기억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보란 왜 객관적일 수 없는지 심오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 영화의 전제는 바로 이것이다. ‘기억은 단기적으로 저장되었다가 이후 필터링을 거쳐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단기 기억 상실증을 갖고 있는 주인공은 장기 기억도 가질 수 없으므로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전제는 오랫동안 뇌 과학 분야에서 통용되던 이론이었다. 과학자들이 이런 이론을 세우게 된 데에는 헨리 몰레이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남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위 간질이라고도 불리는 뇌전증 환자인 헨리 몰레이슨은 1953년 뇌 수술로 해마를 포함한 내측 측두엽이 제거되어 단기 기억 능력을 상실한다.

헨리 몰레이슨 / 사진=영국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헨리 몰레이슨 / 사진=영국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원본보기 아이콘

수술 후 뇌전증은 치료되었지만, 몰레이슨은 수술 이후의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새로운 동작 능력을 배우거나 배운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등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몰레이슨의 케이스는 1957년 스코빌과 브렌다 밀너에 의해 학계에 보고됐고, 그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기억 프로세스 이론을 형성하는 데 기초를 제공했다. 이때부터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 사이에는 선후행 관계가 있다고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리켄(Riken: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이화학연구소)과 MIT 신경회로 유전학 센터의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뇌는 기억을 단기와 장기 형태로 동시에 저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지난 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보도했다.

연구진은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기억이 뇌세포 형태로 해마와 대뇌 피질에 동시에 형성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곳은 해마, 장기 기억을 저장하는 곳은 대뇌 피질이다. 충격을 받은 생쥐의 단기 기억을 껐을 때 생쥐는 충격을 잊어버렸지만, 수동으로 장기 기억을 불러일으키자 다시 충격을 기억했다.

대뇌 피질에 저장된 장기 기억 세포는 형성된 직후 “미성숙하거나 침묵을 지키는” 모습을 며칠 동안 보이며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진은 해마와 대뇌 피질 사이의 연결이 끊기면 대뇌 피질에 저장된 장기 기억이 성숙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는 헨리 몰레이슨이 왜 해마가 제거된 후 장기 기억 능력도 상실했는지를 설명해준다.

이 연구 결과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새로운 이론의 지평을 열었다. 연구 센터장인 스스무 도네가와 교수는 "기존의 지식에 비해 중요한 발전이다. 큰 변화가 일어났다"며 이러한 발견이 "놀랍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인간의 기억 저장 방식에 대한 이해와 알츠하이머·치매 등의 뇌질환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가 기억의 비밀에 더 가까워질수록, 특정 기억만을 인공적으로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는 것도 그다지 먼 미래가 아닐 수 있다. 기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사회는 인간에게 축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재앙이 될 것인가. 영화 ‘메멘토’의 이야기가 한층 더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디지털뉴스본부 박혜연 기자 hypark17@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