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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칼럼]존경 없는 사회, 존경받겠다는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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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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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존경'이란 낱말이 종적을 감췄다. 아니 멸종했다. 사람들은 예사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씨'나 '님' 등 최소한의 존칭도 없이 막 부른다. 정치인은 청문회에 나온 기업인을 범죄인 취급하고 검찰 역시 전혀 다르지 않다. 이러니 남의 인격, 사상, 행위 따위를 받들어 공경한다는 뜻의 존경이란 말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어쩌다 동방예의지국이란 평을 들은 이 나라가 이런 처지가 됐을까. 돌이켜보면 참여정부 때에 시작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그시절에 혐의를 둔다. 그 땐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고인이 된 노 대통령은 진보 성향의 대통령이다. 그를 혹평한 보수 성향의 거대 신문사는 대통령이란 직함을 빼고 '노,~'라는 식의 제목을 달았다. 그 신문이 하면 뭣이든 따라한 당시 신문들도 이 일조차 따라했다.
결과는 참혹하다. 어디를 봐도 사람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일은 드물다. 아무도 대통령, 장관, 유엔사무총장 등의 직함을 붙여 부르지 않는다. 그냥 '누구누구'면 다행이다. 욕설을 붙여서 예사로 부른다. 존경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격 존중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LG그룹을 새롭게 본다. 존경하지 않는 사회에서 존경을 받겠다고 해서다. 반기업 정서로 재벌은 부정축재자로 간주되곤 한다. 비판과 비난을 받기 일쑤다. 초일류 기업이란 삼성조차 이런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러니 이 얼마나 놀랍고도 새로운 도전인가.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최근 신년사에서 "자유 무역에서, 자국을 우선시하는 보호 무역 중심으로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면서 R&D와 제조의 변화와 환경 변화에 앞서갈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의 혁신, 국민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 이 세 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국민과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은 경영 목표 수치를 제시한 다른 그룹에서는 나오지 않은 부분이어서 신선하다. 구 회장은 존경을 받는 방법도 제시했다. 바로 투명경영과 배려를 통한 신뢰의 축적이다. 구 회장은 "사업구조를 고도화하고 경영 시스템을 혁신하더라도,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면서 "경영의 투명성을 한층 더 높여 투자자와 사회의 믿음에 부응하고 배려가 필요한 곳에는 먼저 다가설 수 있도록 하자"고 당부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살균제 가습기를 소비자들에게 팔고, 그것으로 소비자가 목숨을 잃어도 책임질 줄 모르는 기업들이 있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기업과 기업인을 쉽게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재벌과 준재벌, 거부들의 자제들이 곳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하고 직원들을 종 부리듯 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어떻게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겠는가 하는 국민 정서를 생각해본다면 LG그룹의 신년사는 이 그룹만이 아닌 기업 전체의 자성이 돼야 마땅하다. 그것은 존경이란 단어조차 존립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겠다는 기업들의 과감한 도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LG그룹은 이미 여러 해 동안 사회의 숨은 의인들과 국가유공자, 항일 운동가들의 기념관ㆍ유적지 지원 사업을 벌여 온 신뢰받는 기업이다.그럼에도 더 나아가겠다는 것이니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LG가 쌓을 신뢰는 영업이익보다 더 소중한 LG그룹의 미래 자산이 될 것이다. 그렇게 누적된 신뢰자산이 사회의 존경으로 결실을 맺는다면 LG는 한국에서는 극히 드문 영속하는 기업, 장수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리라.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도전해 박수를 받기를 바란다. 힘 내시라.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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