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특징 중 하나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다. 그래서일까. 소설 '광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대화는 5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는 ‘현재성’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기독교에 대한 설명은 정곡을 찌른다. “외국 같은 덴 기독교가 뭐니뭐니 해도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몫을 하잖아요? 정치의 오물과 찌꺼기가 아무리 쏟아져도 다 삼키고 다 실어가 버리거든요. 도시로 치면 서양의 정치사회는 하수도 시설이 잘 돼 있단 말이에요. 사람이 똥오줌을 만들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정치에도 똥과 오줌은 할 수 없지요. 거기까지는 좋아요. 하지만 하수도와 청소차를 마련해야 하지 않아요? 한국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가득 쌓였어요.”
“예전에는 예수쟁이라고 하면 싫어하면서도 그 신실성은 믿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금융거래에서도 목사 장로 교인이라고 하면 절차를 더 까다롭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회적인 신뢰, 도덕적인 신뢰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입니다.”
명색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종교 없는 일반인보다 훨씬 낮은 도덕적 평가를 받고 있어 은행 대출 심사에서도 훨씬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빛과 소금’이기는커녕 도덕 파탄자로 지탄받는 딱한 모습이다. 기독교를 사회악으로, 교회를 혐오 시설로 바라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밀실에서 정부고위직 인사는 물론이고, 문화계, 체육계, 재계를 멋대로 쥐락펴락한 비선실세 최순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등 공부 잘하고 수재 소리 듣던 몇몇 이름도 떠오른다. 그들도 집에 가면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 좋은 남편, 좋은 아내일 것이다. 그들이 비선실세와 장단을 맞추며 국민을 상대로 갑질을 해대는 동안, 광장에는 권력에 빌붙는 기생충들만 넘쳐난다.
작가는 우리 사회 지배 엘리트들의 전근대성을 질타한다. “서양에 가서 소위 민주주의를 배웠다는 놈들이 돌아와서는 자기 몇 대조가 무슨 판서, 무슨 참판을 지냈다는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인민의 등에 올라앉아 외국에서 맞춘 알른거리는 구둣발로 그들을 걷어차고 있습니다.”박근혜 대통령이 없는 자리에서도 ‘주군’이라고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주군이 하명하시길’이란 표현을 쓰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전근대적 행태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소설 말미에서 주인공 명준은 광장 없는 남한 사회의 좋은 점은 “타락할 수 있는 자유와 게으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광장' 이후 57년이 흘렀다. 광장을 팽개치고 밀실에서 타락의 자유를 한껏 누린 그들이 한국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 군림하도록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