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에서 25년 근무하면서 세계 반도체사업을 담당하는 부사장까지 지냈다. 1984년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사장으로 옮긴다. 대만 정부가 그에게 연락한 건 이때였다. 대만 정부는 1985년 그를 국책 산업기술연구소(ITRI) 회장으로 초빙해 대만의 산업기술개발을 의뢰했다.
#2. 서정진(徐廷珍)은 1957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했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했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했다. 1985년 한국생산성본부로 이직해 기업 컨설팅 관련 업무를 했다. 1991년 대우자동차 기획재무 고문으로 발탁돼 임원까지 올랐다. 1992년 한국품질경영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해 활동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8년에 퇴사했다.
1999년 대우차 기획실 직원 10여 명과 함께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했다. 창업할 때무터 바이오산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2004년부터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의 바이오의약품 원료를 생산대행하면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2005년 미국 학회에서 항체 바이오시밀러 산업의 성장성을 확신하게 됐다.
두 경영자는 모두 새로운 산업을 개척했다. TSMC가 선도하고 후발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대만은 파운드리 강국이 됐다. 셀트리온이 성과를 거두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잇따라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한국은 바이오시밀러 분야 강국이 됐다. 셀트리온이 2001년에 둥지를 튼 송도는 국내 바이오산업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경제성장이 제도의 문제인지 사람(기업가)의 문제인지 생각하게 한다. 서 회장은 사실상 홀로 한국 바이오시밀러 산업을 개척했다. 그는 바이오시밀러 전문가가 아니었고 "사기꾼"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으면서 사업을 일궜다. 장 회장은 반도체 전문인력으로 관이 제공한 마당에서 자신의 기획력을 한껏 펼쳤다. 퍼스트 무버 기업가가 나오도록 하는 정해진 방법은 없는 듯하다. 기업가정신이 고취되고 발휘되게 하는 제도적·사회문화적 기반과 토양이 필요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하지 싶다.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