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미의 기준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취향을 단단히 지닌 존재는 그 자체로 빛날 수 있음을 영화 ‘Me Before You’를 통해서도 감흥하게 된다. 우스꽝스럽다는 타인의 평에도 자신의 패션감각을 결코 굽히지 않는 ‘루이자’는 영화가 흐를수록 더욱 반짝이는 존재가 돼 보이며, 불의의 사고로 자존을 완전히 상실한 ‘윌’의 자존을 찾는 마지막 여정에 빛이 되어 준다.
만약 대답하는 목소리와 질문하는 목소리 모두 자신으로만 한정되면, 독선과 오만 혹은 자폐의 굴레에 걸려들게 된다. 또한, 대답하는 거울의 목소리가 연신 타인의 것이라면, 타인의 취향에 맞추는 시늉을 하고 타인의 흉내를 내다 결국 내 삶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살면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문답을 좀처럼 하지 않는 사람과는 상대를 안 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 이와는 애초부터 교감이 불가할 것이다. 교감이 가능하고 깊이 교감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내 거울과 그의 거울을 번갈아 함께 보자. 거울 속 눈을 서로 응시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기를 주고받자. 내 거울이 그의 것에 비해 오목하거나 볼록할 수도 있고, 어느 특정 부분이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다. 상대로 하여금 내가 바라보는 나를 보게 해주는 것, 상대가 바라보는 그를 내가 봐주는 것. 그것이 공감을 이루고 역지사지를 가능케 한다. 서로 이런 노력을 다하다 어찌할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중단한 교감(이별)이라면 상호가 미련에 허덕일 여지도 없다. 미련이란 대체로 자신에 대한 후회나 상대에 대한 원망의 사생아이지 않은가. 그게 상처로 남는 것이고.
솔직하자면, 내면의 거울이나 이상적 교감 등의 어려운 수준은 미뤄두더라도 내 외양을 비추는 거울의 목소리라도 온전한 내 육성이기를, 새해 들어 바래본다. ‘이상’의 시, ‘거울’의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라도했겠소.”
< 이상의 시 ‘거울’ 중 >
김소애 한량과 낭인 사이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