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람의 얼굴을 보는 편이다. 관상을 볼 줄 안다거나 루키즘을 신봉하는 건 아니고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지라는 옛말을 (내가) 나이 들수록 실감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칠하고 가꾸느냐와 상관없이, 사람의 얼굴이 무심코 귀띔해주는 정보에 덕을 볼 일이 점점 많아진다. 누구나 각양으로 타고난 이목구비를, 각색으로 쓰며 산다. 태어나기는 제 의지가 아니지만 쓰는 동안에는 제법 의지가 깃든다.
내가 본 ‘어른의 얼굴’은 대체로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모질었는지, 거기에 어떤 마음보로 맞섰는지를 귀띔해주었다. 그 와중에 자존을 잃지 않으면서도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는 슬기를 부렸는지도. 얼굴에 남는다면, 당연히 몸에도 있을 거다. 걸음걸이, 앉는 자세, 손짓, 어깨와 발뒤꿈치조차 한 사람이 지나온 길을 재생한다. 몸과 마음은 대체로 분리되지 않는다.
온갖 군상의 얼굴이 떼로 나오는 청문회를 보고 있자니 여간 공력이 드는 게 아니었다. 들어주기 힘들어 소리를 꺼놓고 보아도 얼굴들에 밴 악취(또는 향취)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어리광 이상으로 대처해본 적이 없을 한 여성의 미간엔 오랜 신경질이 가득했다. 저와 제 가족의 안위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해본 적이 없는 주제에 공부머리 하나 믿고 사방을 호령하려 들던 한 남성의 눈동자엔 사특한 기운이 스쳤다.
해가 바뀌면 나이가 더해지는 나라에 살고 있으므로 올해의 나이로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새해에는 머릿속에 강령을 하나 새기고 맘을 다잡으려 한다. ‘(올해부터) 주름살의 향방은 주름살 주인에게 달려 있다.’
이윤주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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