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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문태준의 '개복숭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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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들리는 나무다/처음 맺히는 열매는 거친 벌판에 묶인 소의 둥근 눈알을 닮아갔다/후일에는 기구하게 폭삭 익었다/윗집에 살던 어럼한 형도 이 나무를 참 좋아했다/숫기 없는 나도 이 나무를 좋아했다/바라보면 참회가 많아지는 나무다/마을로 내려오면 사람들 살아가는 게 별반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았다

■ 복숭아보다 열매가 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지라 사람들의 손을 탈 일이 그리 없는 B급 복숭아를 매단 나무이다. 마을 주변에 있었던 그 나무를 생각하면서 '아픈 아이를 끝내 놓친 젊은 여자'를 떠올렸다. 아니, 저 여자를 바라보면서 개복숭아나무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시름시름 앓던 아이를 살려보겠다고 발버둥 치다 끝내 천국으로 보내고 통곡하는 스토리와 개복숭아는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가. 열매와 상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골골한 열매를 맺었다 결국 결실도 시원찮게 맺지 못하고 보내니 그 젊은 여자의 흐느낌이 끼어드는 것이다. 윗집에 살던 형이나 시인 자신이나 어럼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주위의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럼하다'가 무슨 뜻이냐고? 모두 고개를 갸웃거리고, 경상도 사람들만 킥킥거린다. 판단력이 약간 모자라면서 어리숙하여 잘 속는다는 경상도 사투리다. 문태준이 그 동네 사람인지라, 그 형은 '어럼하다'는 형용사를 빼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어럼한 사람과 동무해주는 어럼한 나무. 그러기에 뭐든지 뉘우칠 일이 생기는 속 깊은 소통의 나무. 개복숭아도 아름답고 행복하다. 문태준이 그렇게 속삭여준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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