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눌하면서도 핵심을 콕콕 찍는 발언을 해온 이 회장의 '낙제점' 지적이 민심을 제대로 짚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물가가 너무 뛰어 거리의 차가 눈에 띄게 줄었을 정도다. 자영업자 휴ㆍ폐업은 늘었고 청년 실업도 심각하다. 서민들은 살기가 노무현정부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아우성이다.
과연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지난 3년간 국제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금리로 돈을 많이 풀었다. 경기가 회복됐는데 다시 돈줄을 죄는 시기를 놓쳤다. 제때에 금리를 올리지 못한 한국은행은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물가 걱정을 한 뒤에야 한은은 뒤늦게 금리를 올렸다. 원래 정부는 성장률 우선 정책으로 가기 쉽다. 한은은 정부에 맞서 물가를 고수해야 하는데 김중수 총재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오죽하면 한은 총재가 다음에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 정부와 코드를 맞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쓴 사람을 또 쓰는 이명박정부의 회전문 인사방식이 한은 총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아냥이다. 김 총재는 근거 약한 추측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그 자리가 끝이라는 생각으로 소신을 펴야 할 것이다.
정부 경제팀이 성장론자 일색인 것도 문제다. 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느슨하게 운영하고 고환율을 유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종종 정책 노선을 놓고 대립, 균형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재정부 노선에 이론을 제기하는 관료도 없다. 일방통행식 정책이 1997년 외환위기를 촉발한 원인이라고 해서 '재정경제원'을 해체시켰으나 재정부 역시 이와 닮았다.
정책 결정자들이 물가가 뛰어도 성장률 높은 게 낫지, 안정화정책으로 가다가는 인기 잃고 선거에도 진다고 생각한다면 되새길 역사의 교훈이다. 설혹 선거에 지더라도 안정화정책으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경제대통령'의 위신이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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