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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칼럼] MB경제 '재계의 혹평'..화낼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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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이명박정부의 경제성적과 관련해 "과거 10년에 비해 상당한 성장을 해왔으니 낙제점을 주면 안 되겠죠.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정운찬 전 총리의 이익공유제를 비판한 뒤 경제 전반을 싸잡아 혹평한 것이다.

어눌하면서도 핵심을 콕콕 찍는 발언을 해온 이 회장의 '낙제점' 지적이 민심을 제대로 짚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물가가 너무 뛰어 거리의 차가 눈에 띄게 줄었을 정도다. 자영업자 휴ㆍ폐업은 늘었고 청년 실업도 심각하다. 서민들은 살기가 노무현정부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두 손을 든 듯하다. 이 대통령은 물가와 관련해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 "정말 이 힘든 짐을 내려놓고 싶다"고 토로했다. 사실 국제 기름 값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뛰는 나라는 중국이나 일부 남미 국가들 외에는 찾기 힘들다. 윤 장관은 물가불안이 2분기 이후 안정될 것이라고 하지만 인플레는 이제 본격 시작인지 모른다.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여당 의원들도 "물가 관리 실패가 드러난 것 아니냐"고 따지고 나섰다. 경제팀 경질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과연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지난 3년간 국제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금리로 돈을 많이 풀었다. 경기가 회복됐는데 다시 돈줄을 죄는 시기를 놓쳤다. 제때에 금리를 올리지 못한 한국은행은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다. 정부 당국자들이 물가 걱정을 한 뒤에야 한은은 뒤늦게 금리를 올렸다. 원래 정부는 성장률 우선 정책으로 가기 쉽다. 한은은 정부에 맞서 물가를 고수해야 하는데 김중수 총재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오죽하면 한은 총재가 다음에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 정부와 코드를 맞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쓴 사람을 또 쓰는 이명박정부의 회전문 인사방식이 한은 총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아냥이다. 김 총재는 근거 약한 추측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그 자리가 끝이라는 생각으로 소신을 펴야 할 것이다.

정부 경제팀이 성장론자 일색인 것도 문제다. 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느슨하게 운영하고 고환율을 유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종종 정책 노선을 놓고 대립, 균형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재정부 노선에 이론을 제기하는 관료도 없다. 일방통행식 정책이 1997년 외환위기를 촉발한 원인이라고 해서 '재정경제원'을 해체시켰으나 재정부 역시 이와 닮았다.
이 대통령은 최근 물가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지만 청와대 측은 여전히 5% 성장이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성장에 미련이 남아 있으며 물가로 완전히 방향을 전환하지 않은 감이 있다. 오일쇼크로 물가가 폭등한 1978년 초 성장론자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남덕우 경제부총리는 총수요 관리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는 안정론자들의 주장에 쉽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국회의원 선거를 눈앞에 둔 당시의 정부로선 인기 없는 긴축정책을 펼 용기가 없었다. 오래 망설이다 그해 연말에 개각, 안정 정책으로 선회했으나 늦었다. 민심은 돌아서고 부산 마산의 대규모 시위에 이어 10ㆍ26사건으로 3공화국이 파국을 맞게 됐다.

정책 결정자들이 물가가 뛰어도 성장률 높은 게 낫지, 안정화정책으로 가다가는 인기 잃고 선거에도 진다고 생각한다면 되새길 역사의 교훈이다. 설혹 선거에 지더라도 안정화정책으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경제대통령'의 위신이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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