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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칼럼] '기생'과 '눈칫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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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관료가 정치화됐다. 정치인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지난 1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퇴임하면서 공무원 사회의 문제를 지적했다. 1년 전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장ㆍ차관이 영혼을 팔면 나라를 망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에선 '위에서 뭘 좋아할까' 이런 걸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은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며 "공무원은 기생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정치적 입장에 흔들리거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게 요즘 공무원이란 지적이다.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갖고 '정치적 중립'을 표방해온 공무원들에게 모멸감을 줄 만한 말이다.
새삼 전직 장관들의 공무원 사회의 경고를 되새겨보는 것은 요즘 고위직들의 처신에 '오버한다'거나 '쇼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탓이다. 장관들은 기업 회장과 사장을 오라가라 하며 원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거나 직접 계산기를 두드려보겠다며 압력을 가한다. 기름 값과 정보통신 요금이 외국보다 비싼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갑자기 법석을 떤다.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 우유 값도 인상 4시간 만에 원래 수준으로 복귀되고 일부 기름 값도 내려갔다. 좌파 정권에서도 없던 직접 가격 통제다. 뛰는 물가를 몇 개월만이라도 저렇게라도 잡아주니 국민들은 감지덕지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미덥지 않다. 그들이 누구인가. 사석에서는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소신을 피력해온 공무원들이다. 그래서 '오버'라거나 '쇼한다'고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오죽 다급하고 대책이 없으면 그럴까 하면서도 그런 고위직의 오버액션은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물가를 강조했으니 모른 체 하고 있을 수 없어 '일사불란'한 행동을 취했다면 '영혼없는 공무원'이다. 더욱이 그 밑의 공무원들은 어떤 처신을 해야 할지 고심했을 것이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색출해 인사조치 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직원들은 입을 다물고 살아남으려고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소신없는 공무원 사회의 원인을 최 장관과 진 부총리는 모두 '5년 단임 정권의 폐해'라고 말한다. 정권이 자주 바뀌니 소신대로 하다가는 찍혀서 승진을 못하니 위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이제 공무원 사회의 위기를 장ㆍ차관들의 행동이 제공한다는 지적이 나와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또 오버 액션이 경제 현안의 핵심을 놓친 결과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모든 경제 변수를 미리 예상할 수도, 문제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요즘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야 움직이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물가 대처방식은 지방 어느 구석의 전봇대를 문제삼은 것과 닮은 점이 있다. 그런 현상적, 미시적 대처 방식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으며 고위직들이라고 해서 장삼이사(張三李四)보다 나은 혜안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 키운다. 과거 L 장관은 미리 예상되는 수를 서너 단계 앞서 내다보고 일일이 지시해 부하 공무원들로부터 '가장 유능했다'는 평을 들었다. 전세난이나 물가급등도 적어도 6개월 전부터 손을 썼으면 이렇게 난리치지 않았을 것이다.

장ㆍ차관들의 오버한 처신을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불안하다. 또 이 와중에 무언가 놓쳐 더 큰 문제가 재앙의 세포를 번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중에 돈은 엄청 풀려 있는데…. 전두환식의 강력한 긴축정책도 못하면서…. 자칫 박정희 정권 말기의 물가폭등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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