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입장에 흔들리거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게 요즘 공무원이란 지적이다.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갖고 '정치적 중립'을 표방해온 공무원들에게 모멸감을 줄 만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미덥지 않다. 그들이 누구인가. 사석에서는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소신을 피력해온 공무원들이다. 그래서 '오버'라거나 '쇼한다'고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오죽 다급하고 대책이 없으면 그럴까 하면서도 그런 고위직의 오버액션은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물가를 강조했으니 모른 체 하고 있을 수 없어 '일사불란'한 행동을 취했다면 '영혼없는 공무원'이다. 더욱이 그 밑의 공무원들은 어떤 처신을 해야 할지 고심했을 것이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은 색출해 인사조치 하겠다"고 엄포까지 놓았다. '공정위가 물가기관'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직원들은 입을 다물고 살아남으려고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또 오버 액션이 경제 현안의 핵심을 놓친 결과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모든 경제 변수를 미리 예상할 수도, 문제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요즘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야 움직이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물가 대처방식은 지방 어느 구석의 전봇대를 문제삼은 것과 닮은 점이 있다. 그런 현상적, 미시적 대처 방식은 더 이상 신선하지 않으며 고위직들이라고 해서 장삼이사(張三李四)보다 나은 혜안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 키운다. 과거 L 장관은 미리 예상되는 수를 서너 단계 앞서 내다보고 일일이 지시해 부하 공무원들로부터 '가장 유능했다'는 평을 들었다. 전세난이나 물가급등도 적어도 6개월 전부터 손을 썼으면 이렇게 난리치지 않았을 것이다.
장ㆍ차관들의 오버한 처신을 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불안하다. 또 이 와중에 무언가 놓쳐 더 큰 문제가 재앙의 세포를 번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중에 돈은 엄청 풀려 있는데…. 전두환식의 강력한 긴축정책도 못하면서…. 자칫 박정희 정권 말기의 물가폭등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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