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EU측이 브렉시트 협상의 전제조건이라고 못 박은 세 가지 안건, 즉 영국의 탈퇴정산금 문제, 상대국에 체재하는 시민들의 지위 보장. 그리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간 국경협상에 대한 이견차가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탈퇴정산금만 하더라도 최소 400억 유로부터 최대 1000억 유로까지 차이가 엄청나다. 양국 시민의 지위 보장 문제는 영국에 거주하는 EU 시민 300만 명과 EU에 거주하는 영국 국민 100만 명에 대한 영주권 보장 등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민감한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브렉시트 이후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간의 국경 통제, 세관 검사 부활 등에 EU의 반대도 만만찮다.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세 가지를 제외하고도 브렉시트 협상은 당초 예상보다 더 불확실하고 복잡한 길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조기 총선에서 영국 보수당의 과반수 확보 실패로 메이 총리의 공약이었던 'EU 단일시장은 물론이고 관세동맹으로부터도 완전히 탈퇴하겠다'는 이른바 하드 브렉시트의 동력이 약화된 것도 한 요인으로 보인다. 공식 협상이 시작된 지금도 영국의 EU 잔류에 대한 희망을 내비치는 발언들이 적지않아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빈스 케이블 전직 기업부장관의 "브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발언이나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의 "EU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입장 표명이 그런 예다. 심지어 얼마 전 영국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유권자들 중 60%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EU 시민권을 잃고 싶지 않다고 응답하는 등 여론의 풍향 변화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7월 영국경영인협회가 주요 영국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부분이 브렉시트 협상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조치를 실행 중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영국정부의 브렉시트 협상에 대한 불신과 함께 브렉시트의 미래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에 관여하고 있는 한 EU 관리는 사석에서 브렉시트 협상의 진짜 문제는 얼마나 많은 쟁점들이 빙산 밑에 잠복해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털어놨다.
심상비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