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IT는 모든 기업의 핵심 사업이다. 이 때문에 SI 회사 입장에서는 그룹 안에 계열사로 존재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재벌 SI라는 지극히 한국적 현상을 왜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외주란 제조업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한국처럼 장기적 관계를 약속 받은 계열사가 다단계 하청을 동원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은 드물다.
한편 한국처럼 경직된 노동시장에서는 정직원으로 기술자를 들이는 일에 부담을 느낀다. 화이트칼라 정직원들도 '기술은 당연히 외주를 주는 것'이라는 사농공상 마인드가 강하다. 이때 재벌 계열사의 SI 회사처럼 요긴한 것이 없다. 그룹 내 멤버십이니 부리기 쉬우면서도, 고용은 다중으로 분리해 책임과 리스크를 전가한다. 이렇게 왜곡된 구조에서는 원청 업체에 직접 고용돼야 할 기술자들이 하청에 전전하게 된다. 원청의 의도도, 자원의 낙수도, 다단계 하청 말단까지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니 보람 없는 저임금 고노동에 혹사당한다.
한국형 SI는 시장을 통한 경쟁을 억제한다. 최종 상품을 만들어 시장의 선택을 받는 경쟁이 사라지고, 기획단계에서부터의 긴밀한 협력을 전제로 한 원청ㆍ하청의 관계 사슬에 의존적이 되어서다. 스타트업이나 외국산 신상품도 관계의 사슬에 갑자기 끼어들기 힘들어진다. 이래서야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최적화되어 미래 시장에서는 쓸모없는, 굳이 구축하지 않아도 될 시스템만 만들곤 한다.
대기업에는 신규 채용에 의한 신규 프로젝트를 감행하는 무리수를 벌이느니 퇴직할 때까지 조용히 다니는 것이 합리적이며 중소기업에서는 내다 팔 시장도 없는데 제품을 만드느니 인력 파견업이나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 결과 인재가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자본주의 기본 질서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를 하루빨리 바로 잡는 게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일보다 시급한 과제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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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니는 거 의미 없어" 그만뒀더니…3배 더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