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에서는 투자와 고용 증대를 기대하면서 감세정책을 취했지만, 의도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국가의 재정건전성만 약화됐다. 박근혜정부에서는 소위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소비세와 소득세 위주의 증세를 추진했다. 최근 '부자 증세'에 맞불을 놓아 담뱃세를 낮추라는 야당의 주장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저성장 시대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서 그 어느 때보다 재정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육아 및 교육비용의 사회화가 필요하고,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저성장 시대에는 공공부문의 투자를 통해 민간부문의 투자와 고용창출을 유인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조세부담률과 복지지출이 최하위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세금폭탄'을 들이대는 것은 '복지를 지뢰밭'으로 보는 것이다. 취약한 복지제도를 개선할 때마다 세금이라는 폭탄이 터진다고 겁박하는 것이다. 반(反)복지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정서가 깔려있는 것이다. 담뱃값의 인하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서민증세에 화답하는 부자증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 여당도 세제개편에 대한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국민적 공감대를 조성해야 한다.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 과정을 돌이켜 보면, 직접세 위주의 누진적 세제로 선별적 복지제도를 구축하고, 점차 보편주의 복지제도를 확충하면서 소비세의 비중을 늘려나갔다. 북유럽 복지국가의 경우 소비세의 비중이 높지만 개인소득세의 비중 또한 높고, 보편주의 복지제도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재분배정책을 취했기 때문에 성장, 고용, 복지의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다.
증세에 대한 정치적 위기감은 불평등의 해소라는 시대적 요구와 증세에 대한 국민적 지지로 극복돼야 한다. 당파적 이해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치권의 책임있는 결단이 요구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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