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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현 칼럼] 봄날에 노자(老子)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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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뒤뜰 툇마루에 강아지와 고양이가 어울려 뒹굴고 있다. 강아지는 작년에 근처 지인이 새끼를 분양해 준 흰색 발바리고, 고양이는 여기저기 주인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찾아온 놈이다. 아내는 강아지가 홍길동이처럼 빠르다고 ‘길동이’, 고양이는 처녀처럼 얌전하다고 ‘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처음에는 두 녀석이 으르릉거리며 제법 이빨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친구가 되었는지 같이 잠도 자고 나란히 밥도 같이 먹는다.

봄이다!
추운 겨울을 함께 무사히 보낸 지금, 눈부신 초봄 햇살 아래 곤히 두 놈이 머리를 맞대고 누워 평화롭게 낮잠을 자고 있다. 두 어린 생명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노자가 ‘천하에 도가 있으면 군마도 밭으로 보내져 밭을 갈게 되고, 천하에 도가 사라지면 징발된 말이 전쟁터에서 새끼를 낳는다. (天下有道 却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지금은 과연 어떤 때인가.
바야흐로 지금 이 한반도에는 불길한 기운들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북한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할 것 없이 반도를 사이에 두고 마치 무한 군비경쟁이라도 시작한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치 대원군 시절의 조선을 보는 기분이다. 먼저 핑계거리를 제공한 쪽은 북한이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 능력은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예측보다 훨씬 강하게 진행되었다. 어쨌거나 그들의 도발적인 행위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정되어 있던 한반도 주변의 질서를 깨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한미일 동맹으로 중국을 옥죄고 싶었던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대로 남한에 사드를 배치한다, 전술 핵무기를 배치한다 야단법석이다. 우리 쪽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그 틈에 일본은 마침내 2차대전 패망 이후 오랜 숙원이었던 군사무장의 길로 재빨리 들어서고 있다. 울고 싶은 아이 뺨 때려준 꼴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만반의 태세를 강화하면서 함정모함을 비롯한 최첨단 무기를 연일 선보이며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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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대한민국만 그 사이에 끼어 제대로 된 발언조차 한번 못 해보고 얻어터지고 있는 꼴이다. 북한이야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였다지만 우리는 뭔가? 그놈의 사든가 뭔가 때문에 중국의 노골적인 경제 보복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고,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도발을 일삼고 부산 소녀상을 트집 삼아 자국 대사를 소환해 가는 등 온갖 몽니를 부리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 꼴로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일 동맹이라지만 언제나 한국은 2선으로 빠져 있다. 말하자면 앞에서 훅을 당하고 뒤에서 뒤통수를 맞고, 양 옆에서 뺨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다간 우리만 닭 쫒던 개 신세는커녕 청일전쟁 당시의 재앙적 상황이 재현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온통 전쟁을 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그런 인간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는 것 같다. 김정은, 트럼프, 아베, 푸틴, 시진핑…. 모두가 한가락씩은 하는 마초형 인간들이다. 여차 해서 누가 먼저 건드리기라도 하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무능하고 탐욕스런 정권은 늘 백성들을 위험 속에 빠뜨리고, 애국을 가장한 무리들은 강대국의 앞잡이가 되어 나라를 망국의 길로 몰아넣는다.
전국 시대를 살았던 노자는 ‘문 밖을 나가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고, 창틈으로 엿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를 안다(不出戶 知天下, 不窺? 見天道)’고 했다지만 그런 잽이가 되지 못하는 나야 그저 가끔 뉴스를 보며 한숨만 지을 뿐이다. 마음이 울울해진다. 부디 봄볕 아래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저 작은 생명들에게 일어나서는 안 될 불행이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봄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더니 저절로 계절은 어김없이 바뀐다.
이제 곧 천지간에 봄꽃들이 강산을 수놓을 것이다. 올해는 고추와 토마토를 좀 넉넉히 심어 도시 친구들에게 나누어줘야겠다. 그나저나 과연 나 같은 백수 글쟁이에게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지 않은 것이 없다.(無爲而無不爲)’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이 숨가쁜 봄날에 무료히 앉아 노자를 읽으며 생각한다.

김영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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