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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이 겨울, 베토벤의 절망을 생각한다

최종수정 2018.01.11 10:07 기사입력 2018.01.11 10:05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춥다. 목동 열병합발전소 75m 높이의 굴뚝에서 2명의 노동자가 60일째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 높은 곳, 찬바람은 얼마나 매서울까. 단체협약 인정, 밀린 수당 지급 등을 요구했지만 파인텍 사측은 물론 국회와 정부 등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고, 그래서 해결됐다면 굴뚝에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겐 추위보다도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담함이 더 뼈에 사무칠 것이다.

국회 앞,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종선, 최승우 두 사람의 천막농성도 두 달을 넘겼다. 국회는 움직임이 없고, 매스컴은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전두환 시절, 국가보조금을 받기 위해 생사람을 사냥하듯 잡아와 강제노역을 시켰고 그 과정에서 513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희대의 범죄. 그 피해자들은 이 겨울 차가운 거리에 던져진 채 신음하고 있다. 어디 하나 성치 못한 이들에게 찬바람은 쥐약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이 이들을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기자, PD들은 손쉬운 알리바이로 책임을 피해 간다. 이미 한번 방송한 아이템이니까….

내가 굴뚝에 올라간 사람이라고, 국회 앞에서 두 달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 본다. 어디 이뿐이랴. 남들보다 1년 먼저 촛불을 들었을 뿐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감옥에서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내며 얼마나 마음이 쓰라릴까. 전교조 법외노조를 철회하라며 단식농성을 벌였지만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해직 교사들도 있다. 내가 이들과 똑같은 입장이라고 거듭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제 발바닥에 티눈이 급하지, 억울하게 상처입고 피흘리는 타인의 상처에는 둔감하다. 인간이란 동물이 원래 그런 걸까. 인간 혐오가 치밀어 오르지만, 나 또한 그 인간의 일원이므로 누구를 미워할 일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베토벤을 생각한다. 청력 상실의 비극이 하필 가장 위대한 음악가에게 찾아오다니, 음악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봐도 기가 막힌데 당사자인 베토벤은 어땠을까. 그는 32살 때인 1802년, 청력 악화에 절망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 빈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로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6년 전 생긴 귓병이 점점 악화돼 회복될 희망을 버려야 했다. 음악가로 쌓아 온 커리어가 모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였다. 게다가 자신의 절망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 어느 누구나 갖고 있는 감각, 과거에 내가 누구보다도 완벽한 상태로 소유했던 이 감각이 약화됐다는 걸 어떻게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사람들을 피했고, 괴팍한 사람이란 오해 속에 고독으로 내몰리는 ‘이중의 고통’을 받아야 했다.

베토벤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죽음이여, 그대는 나를 이 끝없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다. 죽음이여, 언제든 오라! 나는 그대를 용감하게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삶을 택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예술이었다. “아! 내 속에서 느껴지는, 움트는 모든 것을 내놓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유서에서 온 인류를 행해 이렇게 말한다. “불행한 사람들이여! 한낱 그대와 같이 불행한 사람이, 온갖 타고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이름의 값어치에 걸맞는 사람이 되고자 온 힘을 다했다는 것을 알고 위로를 받으라.” 이 무렵, 베토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음악을 쓸 것”이라고 친구에게 밝혔고, 실제로 하이든, 모차르트 등 선배 작곡가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혁명적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두 동생 앞으로 쓴 유서를 부치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굴뚝 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 국회앞 농성중인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에게 베토벤을 듣고 위로를 받으라고 말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다. 처절한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결국 삶을 긍정한 베토벤, 누구보다 더 불행했던 그는 이 겨울 최소한 내게는 용기를 주고 있다.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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