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천천히 쉬엄쉬엄 비우고 살아야지'라고 다짐을 하지만! 세상은 늘 그렇듯 번번이 나의 결심을 무색하게 만든다. NBA 농구를 즐겨 본다는 북한의 김정은은 6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유도 선수 출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40분 늦게 나타났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MBC 김장겸 사장은 잠적했다가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출두해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고 이런 일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피켓을 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등원을 거부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은 우즈베키스탄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국민들에게 답답함을 선사하며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고 신태용 감독이 헹가래에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히딩크 감독이 다시 국가대표팀을 맡을 수도 있다는 추측성 기사들이 솔솔 올라온다.
후안무치(厚顔無恥). 두꺼운 얼굴을 장착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의기양양해 하는 김정은, 정상회담에 늦게 나타나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앉은 푸틴, 언론을 유린한 공범자 중 공범자이면서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언론탄압을 운운하는 김장겸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단 두 경기를 치룬 감독을 두고 히딩크를 떠올리게 하는 기사나 마광수 교수의 죽음을 이용하는 출판홍보는 모두 우리 시대가 상실한 하나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부산의 여중생들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뻔뻔했고 심지어 당당했다. 무치의 만연은 더 이상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징후로 해석해야 한다.
부끄러움을 집단적으로 상실한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건너야 할까? 우선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몸은 자신의 위기상황을 자각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친구들에게 처참하게 맞아 부어오른 얼굴을 마주할 때, 혹은 사드배치를 막으려 몸부림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목격할 때 몸의 한 부분에 미세한(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대상포진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무치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 모른다. 대상포진은 72시간 내에 항바이러스 주사를 맞아야 효과가 있다. 내일은 나도 꼭 주사를 맞아야겠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