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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유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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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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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위험을 싫어하고 창의성이라고는 눈곱 만큼도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보수적인 은행업자들이었다. 지금도 윌리스(은행 담당자)의 사무실에 앉아 있던 순간이 기억난다... 나는 그의 박해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이것이 바로 힘없는 중소기업 사장의 역할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이 된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Shoe Dog: 신발에 미친 사람)'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해 사람 이름만 바꾸면 한국 이야기인줄 착각할 정도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 등 기업실적 개선으로 경제지표가 좋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온기가 일부 업종과 대기업에 편중돼 있고 이 또한 지속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많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창업기업의 체감경기는 아직도 그리 따뜻하지 못한 것 같다. 최근에는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어려움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의 애로사항 중 부동의 1위는 역시 자금부족이다. 사업하는데 돈은 언제나 부족하게 마련이지만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 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경제에서 자금의 흐름을 담당하는 금융산업의 두 축은 은행과 자본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은 예금자와 대출자 사이에서 자금의 흐름을 중개하는 '간접금융'을 대표하며, 예금자의 돈을 받아 필요한 부문에 지원하고 그 수익으로 이자를 지급하게 된다. 남의 돈을 운용해야 하는 만큼 보수적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안전한 담보가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챙겨보게 된다. 외국에서도 은행들이 대출할 때 살펴봐야 할 3대 요소를 '3C'라고도 표현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안전한 담보(Collateral)인 것이다. 물론 상환능력(Capacity)과 대출자의 특성(Character)이라는 중요한 요소가 같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편 자금이 필요한 사람이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기 명의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방식을 '직접금융'이라고 부르고 금융투자회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투자자들은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는 사람의 사업이 정말 괜찮은지, 현재 재무상태는 어떤지 등을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에 재무제표 분석 등 금융투자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래 은행시스템을 동원하는 정부 주도의 발전전략으로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 역할에도 한계가 나타났고 결국 과잉중복투자는 은행 등 금융회사의 부실화로 이어져 외환위기까지 맞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0년대 이후 자본시장 발전에 많은 힘을 쏟았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자본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고 국책은행 등 은행권에 다시 의존하게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실증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ㆍ독일ㆍ일본 등과 같은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은 제조업 발전에 유리하고, 미국ㆍ영국 등 자본시장중심 체제는 첨단산업의 발전에 더 적합하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4차 산업혁명을 계기로 첨단산업 발전을 추구하려는 우리에게는 자본시장의 심도 있는 발전이 절실한 시점이다. 다행히 정부는 혁신기업이나 대규모 사업 지원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을 마련한데 이어 지난해 11월 5개 금융투자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고 그중 한 곳에 발행어음업무를 인가하는 등 실질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업무영역과 관련한 은행권의 우려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쟁이 은행과 금융투자회사의 기업에 대한 지원능력 제고 경쟁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를 재도약시키는 전환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벤처 등 창업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모토는 '자유의 바람이 분다(Die Luft der Freiheit weht.)'라고 한다. 은행산업과 자본시장에 불기 시작하는 경쟁의 바람이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을 변화시키는 '자유의 바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윤용로 코람코자산신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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