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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서민, 인민,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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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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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8대 대선 때부터 ‘사람중심 경제’를 내세워왔고, 새 정부의 첫 예산도 ‘사람중심’으로 짜겠다 하고 있습니다. 사람중심경제는 Human-centered Economy를 번역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Human이란 역사적으로는 신(神)과 같은 절대권력에 대응하는 말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나의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권력(Power)이라 정의하는데, 산업혁명 이후로는 권력이 신에서 기계로 넘어갔고, 4차산업혁명으로 더 가속화될 일자리빼앗김 현상 때문에 한국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사람 일자리 찾기’를 사회 안정의 핵심 주제로 온갖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얼결에 정권을 잃은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당 혁신선언문에서 우여곡절 끝에 ‘서민중심 경제’를 선언하였습니다. 솔직히 제 지적 수준으로는 이 말도 그 뜻은 금방 와닿지 않고, ‘사람중심’과 ‘서민중심’이 뭐가 다른지 헷갈립니다. 결국 ‘사람’과 ‘서민’이라는 단어의 차이로 정부가 바뀐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서민중심의 서(庶)자는 ‘많다’는 뜻을 갖고 있어서 ‘별 볼 일 없다’로 낮춰 쓰이기도 하는데, 서민은 대중(大衆)과 비슷하게 Common People, Public People, 즉 ‘특별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해당할 듯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서민에 대응하는 단어로 산업화 세대와 강성노조 등을 기득권층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권력을 이미 갖고 있는 계층’이라는 뜻인 기득권층을 서민층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쓴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하지 않은 권력은 청산해야 하지만, 개인의 부지런함이나 지적 역량으로 축적한 부(富)와 권위는 국가가 보호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건설회사, 특히 해외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계약 문구 하나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크게 깨닫게 되는데, 건설회사에 오래 있었던 탓인지 저는 글을 읽으면 습관적으로 단어의 뜻에 민감해집니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달 발표한 혁신선언문 제3항에 쓰인 한자단어들을 한자로 써 보겠습니다. ‘自由韓國黨 新保守主義’는 不正腐敗와 反則, 特權을 排擊하고 公正한 競爭을 保障하는 法治主義에 基礎해 經濟的 自由를 追求한다. 이와 同時에 競爭에서 뒤처진 사람들도 함께 꿈을 이룰 수 있는 國家共同體를 만들기 위해 ‘庶民中心經濟’를 指向한다. 産業化 世代의 旣得權은 勿論 强性貴族勞組 等 民主化 世代의 旣得權도 批判하고 排擊하는 革新을 通해 中産層과 庶民이 中心이 되는 經濟를 活性化하고. 庶民福祉를 增進시키는데 注力한다.

이 선언문은 전체 문장이 한글로 쓰여있는데, 한자단어의 뜻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읽는 대상이 국민인지, 당원들인지 아니면 혁신위원들끼리인지 참으로 헷갈립니다. 이런 백년 전 독립선언문 같은 문장으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니까 ‘수구x통’ 소리를 듣는 겁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China)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으로 표기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의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영어로 People’s Party라 쓰여 있습니다. 영어로는 다 People이므로 외국에서 보면 ‘인민의당’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 서민, 인민, 국민이라는 단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헷갈립니다.

상대방이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내 머릿 속 생각이 덜 다듬어진 탓입니다. 반대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현란한 단어를 동원하여 사실을 왜곡한다면 이는 상대방에게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주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요근래 나온 광고 문구에 “아빠 또 놀러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문구의 단어들은 두어살 아기라면 쓸 수 있는 단어 세개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는 아빠는 더 열심히 직장에서 일할 것이고 엄마는 더 알뜰하게 살림을 꾸릴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매체의 남용과, 스마트폰에 실려 날아다니는 댓글 현상은 도(度)를 넘는 것 같습니다. 이 바람을 타는 정치인들의 도를 넘는 언어유희도 바른 지도자로서의 도(道)가 아닙니다. 온전하고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진심이 담긴 말과 글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정치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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