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의 작가 이언 플레밍은 대학을 졸업한 후 로이터 통신사의 신문 기자, 은행의 증권 중개인으로 일한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정보부에서 첩보 분석가로 근무했던 경력과 여기저기서 들은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이 스파이 이야기를 쓴 것이다. 본인은 스파이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첫 번째 소설인 '007 카지노 로얄(1953년)'에서 제임스 본드가 테탱제(Taittinger) 샴페인을 마시는 것을 시작으로 007에는 항상 샴페인이 등장한다. 2년 뒤에 나온 '문레이커(Moonrakerㆍ1955년)'에서는 '동페리뇽(Dom Perignon)'이 소개되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ㆍ1956년)'에서는 '볼랭제(Bollinger)'가 나온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에서도 스파이가 웨이터로 변장하고 레스토랑에 있는 제임스 본드에게 접근한다. 웨이터가 보르도의 최고급 와인을 내놓고 소개를 하자 본드는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음식에는 클레릿(Claret)이 더 어울리는데…"라고 하니까, 웨이터는 "물론 그렇지요. 마침 클레릿이 떨어져서…"라고 말한다. 이때 본드는 "이 봐, 보르도 레드와인이 바로 클레릿이야!"라고 하면서 스파이를 바닷물에 내동댕이친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없던 웨이터로 변장한 스파이는 본드 앞에서 금방 들통이 나고 만다.
이렇게 제임스 본드는 대상 인물과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을 이용해 상대를 파악하기도 하지만 어떤 자리에서는 와인을 맛보고 메이커와 연도까지 알아맞히는 장면도 종종 나온다. 제임스 본드는 엄청난 와인 지식으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한다. 거기에는 숨은 비결이 있다. 상대가 아끼는 미모의 여자에게 미리 접근해 내 편으로 만든 다음 그 집에 어떤 와인이 있으며, 그 사람이 어떤 와인을 즐겨 마신다는 정보를 알고 접근한다. 물론 영화니까 못 알아맞힐 수는 없다. 제임스 본드는 국가 공무원이니까 정보부 예산으로 유명하다는 고급 와인의 맛을 잘 익혔을 것이고, 그런 와인에 대한 주변 지식까지 습득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와인 공부를 열심히 해도 제임스 본드와 같이 될 수는 없다. 그만큼 와인이 사교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많이 알면 알수록 유리한 경지에 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락 영화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