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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야기]한잔 마시는데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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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이후 생긴 신흥부유층, 귀족사회 행동양식 따라하자
몰락한 귀족들이 일부러 복잡한 상황 연출하면서 테이블 매너 시작

인도 지배했던 영국 총독이 촌장의 마음 얻기 위해
손씻는 물 마신 일화서 알 수 있듯 가장 세련된 매너는 배려
와인. 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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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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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테이블 매너는 산업혁명 이후에 생긴 신흥 부유층이 귀족사회를 본보기로 삼아 테이블 세팅을 비롯해 올바른 매너와 행동양식을 익히는 데 열중한 데서 나온 것이다. 몰락해 가는 귀족들이 "우리는 너희들과 근본이 달라"라는 생각에서 복잡한 상황을 연출한 데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현대의 테이블 매너는 1800년대 후반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 때 완성된 것으로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식사하면서 와인을 마시는데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와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제화 시대에서는 영어뿐 아니라 와인도 비즈니스맨의 공통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애교다. 하지만 레드와인 글라스에 화이트와인을 따랐다는 이유로 어떤 기업의 파리지점장이 해고됐다든가, 와인을 원샷을 해서 비즈니스가 깨졌다는 등의 얘기를 테이블매너라고 겁을 주는 책이 시중에 한두 권이 아니다.

그러나 세련된 매너를 가진 사람이라면 "전통 음주문화란 이런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나라의 습관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의 습관을 무시하는 사람은 국제적인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외국에 가서 상담을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테이블 매너에 대한 기본 상식 정도는 있을 테니까, 여기에 와인 상식만 얹어서 행동하면 무난하다. 그러나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매너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와인을 구매하기 위해 프랑스를 갔다면 파는 입장에서는 꼼짝을 못하지만, 대신 물건을 팔러 갈 경우에는 상당한 와인 지식과 함께 세련된 매너를 갖춰야 한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있었던 얘기다. 영국총독이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고집 센 촌장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던 끝에, 드디어 촌장을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초대받은 촌장은 부하들과 함께 약속된 시간에 연회장에 도착했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고 들어온 촌장은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요리보다는 우선 목이 말랐다. 그래서 자리에 앉자마자 앞에 있는 물잔을 들어 쭉 들이켰다. 그러나 그것은 물잔이 아니고 손을 씻는 '핑거볼'이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총독도 핑거볼을 들어 들이켰다. 그래서 아무 일 없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고집 센 촌장은 총독이 요구하는 사항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총독은 비즈니스에 실패한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통역을 맡았던 영국 유학파 출신의 촌장 부하가 귀띔을 했다. "아까 촌장님께서 처음에 마시던 물은 사실은 마시는 물이 아니고, 손을 씻는 물입니다." 그러자 촌장은 깜짝 놀랐다. "그래. 그러면 미리 알려줘야지." 그러자 부하는 "뭐 앉으시자마자 드시니까 말릴 틈이 없었죠"라고 했다. 촌장은 약이 바짝 올랐지만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총독도 그 물을 마셨잖아." 그러니까 부하는 "아마도 총독은 촌장님께서 어색해 하실까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 순간 "아하 총독, 된 사람이구나"라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 후 총독과 촌장이 다시 만났을 때 일이 어떻게 됐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매너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촌장은 마시고 있는데 자기는 손을 씻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면 촌장이 마시려고 하는데 "그건 마시는 물이 아닌데요"라고 작은 목소리와 눈짓으로 얘기했다 해도 상대의 기분은 언짢다. 상대가 마시니까 나도 마신다는 간단한 생각 하나로 총독은 촌장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세련된 매너라도 상대가 기분 나쁘면 진정한 매너가 아니다. 이런 것을 '글로벌 매너'라고 한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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