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관해도 맛 똑같아 레드와인은 부드러워지기도
와인은 발효 과정을 거쳐서 태어나고 숙성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가장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병 속으로 들어가 코르크 마개로 밀봉된 채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병에 들어간 와인은 유리, 코르크 그리고 한정된 양의 기체와 접촉하게 되는데, 이들 모두 와인에 화학적인 변화를 주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든 와인은 일단 병 속에 들어가면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코르크나무는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많이 분포돼 있는데 우리나라의 굴피나무와 같이 껍질을 벗기면 다시 그 층이 형성되는 참나무 계통의 나무이다. 대부분의 목본식물은 코르크층을 갖고 있지만 그 두께가 빈약해 별도로 이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지중해의 코르크 참나무는 두꺼운 코르크층을 계속 만들어 내므로 상업용 코르크를 얻기 위해 주기적으로 껍질을 벗겨낸다. 주로 수령 40년 이상 된 나무에서 보통 10년 간격으로 껍질을 벗겨 수확하는데 처음 수확한 코르크는 질이 좋지 않아서 병마개로 사용하지 않는다. 코르크에는 속이 비어있는 벌집과 같은 육각형의 방이 1㎤ 공간에 수천만 개가 들어있다. 이렇게 코르크 전체 부피의 85%가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돼 있어서 특유의 물리적 성질을 갖게 된다. 즉 아주 연하고 가벼우면서 탄력성이 좋아 압력을 가해도 금방 원상복구가 된다.
"와인은 코르크마개를 통해서 숨 쉬면서 숙성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캡슐 위에 난 구멍은 코르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뚫어 놓은 것이다"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캡슐의 구멍은 캡슐을 병에 씌울 때 공기가 캡슐에 막히지 않고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뚫어준 공기구멍이다. 와인이 숨 쉬면 공기가 들어가서 와인은 바로 식초로 변한다. 코르크 끝에 와인이 접촉한 부분을 얇게 잘라보면 색소가 전혀 침투하지 못한 하얀 속살이 나온다. 공기가 코르크 내부로 침투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와인은 병에 들어가면 그 당시의 맛을 개봉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한다 해서 더 좋아질 것은 없다. 그렇지만 알코올 농도가 높고 묵직한 레드와인은 세월이 지나면서 미세한 변화를 일으켜 서서히 맛이 부드러워지는 경우도 있다. 이는 와인 자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한 것이지 결코 코르크가 숨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