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에게 '병원' 문제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병원이 없거나 의료진이 부족한 지방도시 얘기가 아니다. 큰 병원이 많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이지만, 병원갈 일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면 한결같은 비슷한 내용의 조언을 한다.
외국인들이 중국 병원에 대해 갖고 있는 강한 '의심'은 어쩌면 처음 중국에 입국했을때부터 생겨났을 수도 있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거류하려면 비자(거류증)를 신청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 입국 후 해당지역 검역국 지정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받아 제출해야 한다.
기자 역시 베이징에서 비자용 건강검진을 전문으로 하는 '지정장소'에 찾아갔을 때 받았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어둡고 으스스한 장소에서 외국인들은 검사 항목과 순서들이 적힌 A4 용지 크기의 종이를 들고 숫자가 적힌 검사방을 차례대로 도는데 통과의례적ㆍ형식적으로 대충대충 진행된다. 경직되고 무성의한 진료 태도로 마치 건강검진을 받는 게 아니라 실험실의 '실험대상'이 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혈액 샘플 채취때 갑자기 넣었다 뺀 주사바늘 때문에 팔에 시퍼렇게 멍이든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불신은 불거진 백신파동으로 정점에 달했다. 중국 제약사 '창춘창성'이 산둥성 질병통제국에 납품했던 영·유아 접종 DPT(디프테리아·백일해·파상풍)백신 25만2600개가 불량임이 확인되면서 중국 병원과 주사, 약에 대한 불신은 외국인 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까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나라를 못 믿겠다"는 분노의 글들이 넘쳐난지 오래다. 자녀의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해 대거 홍콩으로 내려가 예방접종을 하는 중국인들 때문에 홍콩이 백신 부족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외국인들은 더욱 불안할수 밖에 없다. 특히 중국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은 '필수 예방접종'이란 또 하나의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한국의 필수 예방접종 항목과 중국의 필수가 다르다보니 외국인이 중국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키려면 중국에서 예방접종을 추가로 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때마침 입학시즌에 일어난 불량 백신 파동 때문에 외국인 부모들도 중국 부모들과 함께 발을 동동 굴러야하는 처지에 몰렸다.
2008년 중국 분유 생산업체가 단백질 함량 기준치를 맞추기 위해 멜라닌을 분유에 넣은 사실이 적발된 '멜라닌 분유' 파동 이후 꼬박 10년이 지났지만 분유에서 백신으로 대상만 바뀌었지 중국산에 '불량' '가짜'에 대한 수식어는 여전하다. 책임자에 대한 엄중 처벌은 물론이고 생산자의 윤리 제고와 철저한 감시·감독 시스템 구축이 신뢰 회복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베이징 박선미 특파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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