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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북한산 송이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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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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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송이버섯을 생애 처음 맛본 곳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였다. 말로만 듣던 북한산 송이를 어렵게 구했으니 먹으러 오라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북한산 송이의 주인은 북·중 접경 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시에 사는 무역상이었다. 어떤 경로로 그 귀한 것을 손에 쥐었는지는 묻지 말라고 했다. 북한산 송이는 예전에는 중국에서, 특히 북한과 국경이 맞닿은 도시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북·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이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어려워졌다. 북한산 송이를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북한산 송이는 오랜 기간 북한의 대표적인 대일 수출 상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나서면서 북한산 송이는 무척 귀해졌다. 북한산 송이를 북한산이라 부르지 못하는 신세로까지 전락했다.
사실 북한산 송이는 전략적인 외교 물자다. 풍미가 일품이거니와 그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어마어마하다. 남과 북을 잇는 연결 고리이기도 하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만이 북한으로부터 송이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남북 정상회담 답례품으로 최대 10억원어치에 달하는 '칠보산 송이'를 통 크게 쏜 일화는 유명하다. 함경북도 명천군에 위치한 칠보산에서 채취한 송이는 북한산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힌다. 이처럼 북한산 송이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극적인 대화 분위기로 반전한 남북 관계 속에 북한산 송이가 자연스레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최근 남북은 물론 북·미 대화 국면을 보면 북한산 송이를 머지않아 또 맛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슬며시 든다. 유관국인 중국과 일본, 러시아도 모두 북한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취하는 등 한반도가 대화 물결로 출렁인다. 중국은 관변 학자의 입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베이징을 기꺼이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일 정상회담을 먼저 요청하는, 전에 보기 어려운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은 2004년 5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방북한 이후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이들 국가의 이례적인 행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남북과 미국 등 3자 구도로 흘러가는 데 대한 경계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현재의 3자 구도를 4자 또는 6자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 확대 재편하는 게 이들 국가의 최대 목표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 꺼낸 3자 정상회담 카드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회의를 주재한 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세계사적인 일"이라면서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북핵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은 지금까지는 논외의 처지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장소로도 판문점을 우선 거론해 딱히 베이징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문 대통령은 우선 남·북·미가 만나 종전 협정을 위한 상징적인 선언을 만들어내고 이후 비핵화 절차 상황을 보면서 중국을 비롯한 관련 국가를 참여시킬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체제로 가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루 만에 갑자기 대화와 협상 테이블에 앉겠다는 북한의 진의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다만 문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김정은 송이'를 선물로 받고 이를 미·중·일·러 등 유관국 정상과 나눠 먹는 역사적인 장면을 이 시점에서 상상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베이징 김혜원 특파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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