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조부는 요즘으로 말하면 이른바 재벌가에 속하는 대단한 만석꾼의 자손이었다. 손이 귀한 집안의 아들이다 보니 그 존재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물이 출중한 데다 성품까지 온화하고 가정적이셨던 외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어려운 주변 사람들을 소리 없이 돕는 한편 사재를 털어가며 문화재를 지키고 청년을 교육하는 일에 평생을 바치셨다. 그야말로 노블레스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삶을 사신 분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나 생김새 또는 됨됨이를 뜻하는 용어로 '꼴'이라는 말을 쓴다. 본래 부정적 의미가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하는 짓이나 모습이 몹시 이상하거나 우스워 그냥 보아 넘기기가 어려움을 뜻하는 '꼬락서니'로 낮춰 이해되고 있다.
관상학을 다룬 허영만 화백의 작품 '꼴'을 보면, 사람의 얼굴뿐 아니라 언행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귀하고 천함이 드러난다고 하면서 여섯 종류의 귀하지 않은 꼴을 제시한다. 이 중 1천(賤)은 남들이 흉보는지 욕하는지 모르고 떠드는 수치를 모르는 자다. 2천(賤)은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스스로 떠들고 다니는 자, 3천(賤)은 옆 사람은 곤란을 겪는데 웃으며 딴청 피우는 어리석은 자, 4천(賤)은 무슨 일이든 확실하지 않고 나갈지 들어올지를 모르는 자, 5천(賤)은 남이 안 되기를 바라면서 헐뜯는 자, 6천(賤)은 자기 자랑 할 건 없으니까 남을 팔아서 돋보이려는 자다.
어느 항공사 총수 일가가 자택 리모델링을 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공간의 꼴을 생각한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 한옥을 지을 때 적절한 공간 규격을 산정하기 위해 적용한 척도 기준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 신장에 비해 너무 크고 높으면 공간 사용자가 기고만장해 쓸데없이 우쭐하고 뽐내게 된다고 한다. 반면 너무 낮으면 기가 제대로 순환하지 못하고 눌려 공간 사용자가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집이라는 생활공간이 자신의 부나 능력을 과시하는 대상이기보다는 사용자의 꼴에 맞춘 합리적인 공간이 돼야 함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누구에게나 타고난 얼굴의 생김새처럼 겉으로 보이는 꼴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 심성이라는 내면적인 꼴일 것이다. 어느 철학 교수가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잘 살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왜 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모습에 부합하는 진정한 삶의 꼴이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영주 중앙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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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려고 맞았는데 아이가 생겼어요"…난리난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