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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연명의료법과 성숙한 임종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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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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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4일부터 우리나라에도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범 사업을 마치고 본격 시행됐다. 이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환자 본인의 결정이나 또는 가족의 동의에 의해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웰다잉(Well Dying)법' 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말기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 즉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부착, 혈액 투석 등의 과정을 하지 않고 임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의식이 분명하고 의사결정력이 있을 때 환자의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 긴급 상황이 왔을 때 이번 제정된 연명의료법에 의하면 가족 전원이 합의해야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가 가능하다. 실제 현장에서 환자 진료에도 바쁜 의료진이 가족관계증명서에 있는 모든 가족을 불러 모아 일일이 자세한 설명을 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노인 환자의 경우라면 직계존비속 가족의 범위가 수십 명에 이를 수 있고, 연락이 끊긴 경우 또는 가족들이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데 의료진이 불러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족 전원이 합의하지 않고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법에 저촉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결국은 족쇄가 돼 대다수의 요양병원에서 오히려 말기 임종환자를 꺼리고 상급병원으로 보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임종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이 합의되지 않아 모두 중환자실로 들어가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정말로 필요한 중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연명의료법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도중이었던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환자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임종하기 한 달 전에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고 존엄사를 시행했던 사례가 보고됐다. 이 경우 환자의 의식과 인지능력이 분명해 환자 본인의 의사표현과 결정능력이 있었으며, 죽음에 대한 사전 합의가 됐던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아직까지도 우리의 문화는 의사나 환자 모두 말기 환자라 할지라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죽음'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하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 의료현실에서는 치료 과정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자칫 치료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돼 환자들이 극심한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기에, 연명의료를 중단할지 물어본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생명의 시계는 돌아가며, 넓은 의미의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생물체로서 우리의 숙명이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죽음을 인지하고, 어떻게 하면 본인이 고통 받지 않는 상황에서 가족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제정된 연명의료법은 시행 초기부터 여러 문제점이 도출돼 당장 현장에서 일괄 적용하기 어렵고, 사례별로 적용하는 혼란기를 거치고 보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런 법 제정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도 죽음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금기시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종교적 신념, 철학적 입장이 다르지만 어떤 순간이 다가오면 임종에 대한 사전의 충분한 숙고를 거쳐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의사를 밝히는 것, 환자가 병원에 오면 연명의료를 받을지에 대한 의사를 묻는 것이 더 이상 부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이 되는 성숙한 임종 문화를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은주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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