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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이 아닌 이유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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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하는 대학동창 친구가 갑자기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싶어 집으로 초대했지요. 아닌게 아니라 작년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초등학생 아이를 둔 언니까지 암에 걸렸다고 합니다. 집안 분위기가 어떨지 안봐도 뻔한 상황.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저까지 울컥했지만 분위기를 바꿔보기로 했지요.

"그런데 말야.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지 않니? 그래서 너희 삼형제를 낳아주고 공부까지 다 시켜주고…." "……."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언니가 있다는 것도 너무 감사하잖아." "……." "언니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돌봐주는 가족도 있고, 치료 받을 돈도 있고, 건강했을 때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 역시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그런가……." 이런 대화는 3시간 가까이 지속됐습니다.
"가족이 있다는 거, 아플 때 치료받을 돈이 있다는 거, 힘들 때 돌봐줄 사람이 있다는 거…. 이건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거야. 세상엔 태어나서부터 아픈 사람도 있고, 부모 없이 혼자 크는 아이들도 있고, 밥 먹을 돈도 없는 사람도 있어. 그에 비하면 너는 얼마나 축복받았니."

그리고 저는 무화과 한접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무화과나 먹어. 그거 아니? 없을 무, 꽃 화, 꽃이 피지 않는 과일이라 무화과래. 열매 속에 꽃이 피었거든." "와, 이렇게 보니 참 이쁘다. 그러고보니 나 태어나서 무화과 처음 먹는거야. 정말 감사한 일이네." "그럼~" "너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고마워."

친구는 조금이나마 밝아진 표정으로 떠났고 저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지요. 처음 겪는 불행은 너무나 무섭고 두렵고 막막합니다. 나만 혼자 이렇게 최악의 상태에 남겨진 것 같지요. 하지만 조금만 시각을 바꿔보면 최악이라고 했던 상황조차도 최악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실패가 두렵지 않으세요?' '여자 혼자 해외 돌아다니기 무섭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무슨 특별한 DNA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겁없이 그 많은 도전을 했나 싶어 저 스스로도 놀라곤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최악의 상황을 이미 겪어서'입니다. 10대 때 죽을 뻔한 경험을 여러 번 했고, 학교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밑바닥 생활을 했었기에, 무슨 경험을 해도 그 때보다 나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웬만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제 인생 최고의 축복은 인생 최악의 사건들을 10대 때 미리 겪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남편은 고등학교 때 아토피와 스테로이드 후유증이 너무 심해 학교에 가지 못했고 산에서 도라지 같은 것만 먹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어머니에게 '제발 죽여달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덤으로 얻은 인생이라 생각하고 매사에 감사하며 삽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들이 남은 생의 살아가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듯 '최악'의 상황을 겪고 나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뀝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지금의 상황은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물론 암흑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런 분들께 저는 감사일기를 쓰라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저도 2년전부터 남편과 감사일기를 공유하며 매일 5개씩 감사한 것들을 적어보는데요. 정말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날에도 감사일기를 쓰다보면 최악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처구니 없는 일로 기분 나쁘게 돈을 잃었다 해도 '이런 상황에서 같이 화내고 걱정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일을 당해서 감사하다' '돈을 잃었지만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어 다행이다' 등과 같이 어떻게든 감사할 것들을 찾게 되더라구요.

인생의 바닥을 쳤다는 사실 역시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내 삶의 감사한 것들을 헤아려 보세요. 이제부터 당신은 서서히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김수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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