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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최초의 거울/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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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불길에 휘감기는 오래된 상처
사랑, 죽음을 배송하는 깊은 병

뼛속에서 얼어붙고 피 속에서 증발하여 기쁨을 삭제하는, 사랑
상처 깊은 사람은 언제나 상처 근처로 끌려간다네
뜨겁게 마찰하고 폭풍처럼 떠나가 폭발하는
사람의 육체
죽음 속으로 사라진다

팽창하는 신앙심처럼
몸에 피를 채워 커지는 사랑

육체는 물처럼 빵처럼 어둠을 빨아들이네
육체가 흡수할 수 없는 것은 없다네
육체가 먹어 치운 아름다운 얼굴에 나를 기입하지 못했네
그 틈에 나를 끼워 넣지 못했네
그 안으로 완전히 옮겨 가지 못했네
다 살았다
흙으로 들어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졌는데 그 사람의 이미지 죽지 않는다네
앞에 서 있네 달큰한 그 이름 심장에서 들끓네

사랑이 다가오면 바람은 도망치고 구름은 흩어지고 꽃들은 싹을 틔우고 물결은 높아지고 하늘이 빛나고 구름떼 하늘에 넘치고 바다와 산과 물살 드센 강과 푸른 들판 전부가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 밖으로 보이는 것 밖으로 솟아나오는 것 의지를 무찌르고 우뚝 일어나는 그것은 그것은 사랑은


■왜 사랑은 "불길에 휘감기는 오래된 상처"인가. 낯설지 않은 이 문장은 그러나 스스로에게 전복적이다. "최초" 다음의 모든 것들은 "최초"의 잔여다. 사랑은 특히 그렇다. '복제'나 '반복'이 아니라 '잔여'라고 적은 까닭은 안타깝게도 우리가 "최초"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최초"가 남긴 "상처"-"이미지"에 끌릴 뿐이다. "사랑이 다가오면" "전부가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는 토로는 "얼굴"이 "상처", "이미지"와 동일 계열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에 적힌 "그것은 그것은 사랑은"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최초"의 복원이나 그 잔여에 다시 휘감기는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 솟아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과연 "그것은" 즉 그러한 "사랑은" 가능한가? 도저한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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