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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옆으로 가는 사람들/홍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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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수십 미터 암흑 속
바퀴가 길을 내고 있다
단단한 바닥을 부딪는 신음 소리
찢겨 나가는 바람의 외침
못 들은 척, 마주 앉은 얼굴들

마주 보고 안기
지하철 좌석의 이 어색한 배치는
어쩌면 방관의 자세
어둠을 가르는 일은 바퀴의 몫으로 두고
그 고통이 남긴 궤적을 따라
사람들, 비켜 앉은 채 옆으로 간다
그들의 최선은
어둠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는 것
삶의 긴 터널을 지날 때처럼
그저 시간을 견디는 것
해서 함부로 고개 돌리지 않는다
가끔 한 줄기 비명 같은 섬광이 일고
구부러진 길에서 커다랗게 휘청거릴 때조차

마침내 따뜻한 어느 플랫폼에 닿을 때까지
그렇게 불안을 통과하고 있다

[오후 한 詩]옆으로 가는 사람들/홍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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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좀 뻘쭘할 때가 있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사람과 문득 눈을 마주칠 땐 특히 그렇다. 그럴 때는 괜히 딴 데를 보다가 어쩌다 그리된 것처럼 시늉을 하거나 그마저도 궁색할까 봐 급히 고개를 숙이곤 한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왜 그랬나 싶었는데 이 시를 읽고 보니 알겠다. 나나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이나 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작은 두려웠던 것이다. "수십 미터 암흑 속" 그 어둠이, 그 어둠 같은 우리의 "삶"이 말이다. 그리고 "구부러진 길에서 커다랗게 휘청거릴 때조차"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어둠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는 것" "그저 시간을 견디는 것"이어서 그처럼 서로 못내 민망했던 것이다. 그러니 "방관"은 아니어라, 진정 아니어라. 오히려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서로를 모르는 척 어색하게 지탱하면서 너나없이 "불안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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