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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알래스카/이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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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급식소에 어린 눈사람이 들어왔다
손등이 얼어 발갛게 터져 있었다

고놈 참, 급식소 여자가
안쓰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밥을 담아 준다
너는 연어를 만났느냐, 빙하도 보았느냐,
옆자리 노인이 묻자

연어나 곤들매기를 낚싯바늘에서 빼내
알래스카의 갯바위에 던져 놓고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기도 했단다

사람들은 그 말에 귀 기울이며 밥을 먹는다
어린 눈사람을 힐끔거리며
알래스카로 가는 희망을 품는다
눈사람이 왜 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노인은 자신의 빨간 장갑을
어린 눈사람의 손에 끼워 주었다

성탄절 아침
어린 눈사람이 빨간 모자에 장갑을 끼고
성당 앞마당 성모상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틀 뒤면 설이다. 아마도 내일이면 애기들에게 새로 산 꼬까옷을 입히고 선물 꾸러미를 한 아름 들고 부모님께서 계신 고향으로 내려가느라 다들 분주할 것이다. 차야 좀 막히겠지만 아직 추위가 매섭기는 하지만 마음은 넉넉하고 흐뭇할 것이다. 그런 설을 앞두고 무료 급식소의 정경을 전하는 까닭은 쓸데없이 너르고 텅 빈 오지랖 자락을 은근슬쩍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지랖이라니! 기억하는가. "성탄절 아침" "성당 앞마당 성모상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눈사람을 말이다. 우리가 지난 연말 동전 한 닢과 맞바꾼 것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양심과 의무인지도 모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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