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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백년 도마/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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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가 그립다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고향 집 부엌에
도마는 여전히 거기 있을까

감나무로 만든 도마
우리 집 여자라면
한 번쯤 단단히 스쳐 갔을
칼집 난 자리가
집안의 손금이 되어 버린
백년 도마
다른 건 몰라도
생명선은 길어서
그대로 있을지 몰라

(중략)

김칫독에서 막 꺼낸
살얼음 낀 김치를 썰 때
도마에서 나던
초겨울의 소리
그립다

■ 쌀 씻던 소리. 쌀 씻으며 호호 입김 불던 소리. 엄마 소리. 엄마가 종종 걸음을 옮길 때마다 콩나물이 무쳐지고 수란이 익던 소리. 낑낑 복실이가 장마루 앞을 맴돌던 소리. 처마마다 매달린 고드름들도 자꾸 말갛게 곁눈질하던 소리. 괜히 헛기침하면서 실은 투덜거리면서 석쇠 뒤집던 소리. 연탄아궁이에서 양미리 굽던 소리. 아빠 소리. 그러거나 말거나 토닥토닥 도마 소리. 사각사각 김치 써는 소리. 보글보글 밥물 끓던 소리. 자글자글 강된장 조리던 소리. 아까아까부터 저녁이었지만 비로소 저녁이 되던 그 겨울의 저녁 짓던 소리. 아직 그리워지기도 전에 백 년 전부터 이미 그리워져 버렸던 소리. 매일매일 숟가락 한가득 푹푹 다시 떠먹고 싶은 소리.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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