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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기하학적인 삶/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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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우리는 점이고 부피를 가진 존재다.
우리는 구이고 한 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 멀어지면서 사라지고
사라지면서 변함없는 크기를 가진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칭을 이루고 양쪽의 얼굴이 서로 다른 인격을 좋아한다.
피부가 만들어 내는 대지는 넓고 멀고 알 수 없는
담배 연기에 휘둘린다. 감각만큼 미지의 세계도 없지만
삼차원만큼 명확한 근육도 없다. 우리는 객관적인 세계와
명백하게 다른 객관적인 세계를 보고 듣고 만지는 공간으로
서로를 구별한다. 성장하는 별과 사라지는 먼지를
똑같이 애석해하고 창조한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나왔지만
우리가 만들어 낸 자연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메바처럼
우리는 우리의 반성하는 본능을 반성하지 않는다.
우리는 완결된 집이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우리의 주변 세계와 내부 세계를 한꺼번에 보면서 작도한다.
우리의 지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고향에 있는
내 방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간다. 거기
누가 있는 것처럼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 점을 찾는다.

 
[오후 한詩]기하학적인 삶/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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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어떤 "기하학적인 삶"이 따로 있어서 그것을 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기하학적으로 좀 적어 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옮기고 보니 참 재미있다. 예컨대 "우리는 완결된 집이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인간의 몸 겉면을 그대로 기술한 문장이다. 인간의 몸은 "완결된 집"처럼 보이지만 눈, 귀, 코, 입, 항문, 그리고 온몸에 퍼져 있는 무수한 모공 등 헤아릴 수 없는 구멍들로 가득하다. 여기에 덧대 조금만 더 기하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우리가 물을 마시면 그 물은 입과 식도, 위와 내장, 배뇨 기관을 거쳐 몸 밖으로 다시 흘러나온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마치 클라인 병처럼 말이다. 우리의 몸은 닫혀 있는 듯하지만 실은 열려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적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남십자성이 췌장을 관통하는 중이다. 시가 어디 따로 있겠는가. 우리의 몸이 이미 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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