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모자철학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원본보기 아이콘
알프레드 가드너는 1865년 영국의 챔스포드에서 가구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며 소년 시절부터 신문사 심부름이나 배달 등 허드렛일을 했다. 1887년 '노던 데일리 텔레그라프'에 입사해 언론인이 됐다. 특히 1915년부터 '더 스타'에 'A of P(Alpha of the Plough:북두칠성 자리의 첫째 별)'이라는 필명으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가드너는 생활 속의 작은 소재를 짧은 글에 녹여 삶에 대한 성찰로 연결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예술과 문화 현상에 밝은 그는 간결하고 쉬운 문장에 재치와 유머를 담아냈다. 베이비붐 세대라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가드너의 글을 읽었으리라. '모자철학(On the Philosophy of Hats)'이라는 수필에 가드너의 특징이 오롯이 고였다. 내용은 이렇다.
가드너는 모자를 다리려고 모자점에 간다. 모자점 주인은 모자와 머리의 관계를 말한다. 변호사들의 머리는 놀랄 만큼 크다면서, 머리의 크기가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가드너는 자신의 머리가 6과 8분의 7인치니까 모자점 주인이 보기에는 대단치 않은 인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자점 주인에게 빈약한 인상을 주었으리라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나의 보통의 머리를 떠받들고 모자점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다시 생각한다. '위인 중에 머리가 큰 사람이 더러 있기는 했다'고 인정하면서 비스마르크의 머리 크기(7과 4분의 1인치)를 예로 든다. 하지만 괴테가 '셰익스피어 이래 유럽에서 나온 가장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칭찬한 바이런은 머리가 작았고, 뇌가 대단히 작았다'고 반격한다. 중요한 것은 뇌의 크기가 아니고 그 회전의 빠름이라는 것이다.

머리, 곧 뇌의 크기는 지능과 얼마나 관계가 있을까?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적은 최근 20만 년 동안 1350㎤정도였다. 하지만 현생인류보다 열등했다는 네안데르탈인의 뇌 용적은 1600㎤나 된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견된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는 뇌 용적이 380㎤에 불과했다. 체격이 현생 인류와 비슷한 영장류의 뇌 용적(약 400㎤)보다 작다. 그러나 놀랍게도 불과 각종 도구를 잘 다뤘다고 한다.
학자들은 인류의 진화를 설명할 때 뇌용적의 지속적인 확대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현생 인류보다 훨씬 뇌 용적이 컸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절멸했는가. 호모 에렉투스는 1,000㎤짜리 뇌로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현생 인류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뇌 용적으로도 네안데르탈인에 필적하는 생활수준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가드너의 수필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각자의 취미나 직업이나 편견으로 물든 안경을 쓰고 인생의 길을 간다. 이웃 사람들을 자신의 자로 재고 자기류(自己流)의 산술(算術)로 계산한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볼뿐 객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즉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실제로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는다. 우리가 사실(事實)이라고 하는 그 다채로운 것을 알아보려 할 때 거듭 실패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화부 부국장 huhball@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국내이슈

  •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해외이슈

  •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PICK

  •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매끈한 뒤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