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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미노타우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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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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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인격체가 자주 등장한다. 켄타우로스(사람의 상반신에 말의 몸뚱이), 판(허리 위쪽은 사람, 염소 다리에 뿔), 하르피아이(여자 얼굴에 몸은 독수리), 메두사(머리카락이 모두 뱀), 에키드나(상반신은 미녀, 하반신은 뱀), 스핑크스(사람의 머리에 사자의 몸)…. 동물과 결합했지만 최소한 얼굴은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미노타우로스는 특별하다. 몸은 인간인데 머리만 소다. 생김새가 이러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아는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아가씨다. 하반신만 물고기 모양이라 거기서 다리를 갈라내 우리 세상의 왕자와 사랑을 한다. 반대로 생선대가리에 늘씬한 두 다리가 붙어 있다면? 그냥 괴물이다. 러브 스토리는 어림없다.
미노타우로스는 크레타 섬의 왕비 파시파에와 수소 사이에서 태어났다. 탄생의 근원에 배신이 있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제사지내며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는 선물을 보내 달라고 빌었다. 그 선물을 즉시 잡아 포세이돈에게 바치겠다고. 포세이돈은 황소 한 마리를 보낸다. 하지만 견물생심. 미노스는 잘생긴 소를 바치기가 아까워졌다.

포세이돈이 저주를 내린다. 왕비가 수소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암소 모양으로 만든 틀에 들어가 소와 통정한다. 그리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잉태하였다. 미노스는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두고 아테네에서 조공으로 바친 젊은 남녀 일곱 쌍을 던져 먹이로 삼는다. 암소 모양의 틀도, 미궁도 다이달로스가 만들었으니 얄궂다.

사람을 먹이로 삼는 괴물을 오래 살려둘 수 없다. 신화 세계의 슈퍼스타 테세우스가 해결사로 나선다. 그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 아이트라의 고향인 트로이젠에서 자랐다. 조공으로 바쳐진 젊은 남녀들 틈에 끼어 크레타 섬으로 건너간 그는 미궁 속에서 미노타우로스의 목숨을 빼앗고 무사히 탈출한다.
여기 고대 신화의 법칙인 '공주의 사랑'이 작동한다.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건넨 실타래 덕에 미궁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 그는 고구려 신화에 등장하는 호동왕자와 유리왕을 섞어놓은 듯하다. 호동은 낙랑공주의 도움으로 자명고를 찢어 낙랑을 정벌한다. 유리는 '일곱 모가 난 돌 위 소나무 밑'에 숨겨진 끊어진 칼 토막을 찾아 아비 주몽을 찾아간다. 테세우스도 아이게우스가 숨긴 검을 찾아 왕자임을 증명한다.

테세우스의 승리는 고대 세계에서 이성과 진리가 원시와 야성을 제압하고 비로소 문명의 빛을 밝히는 상징으로 읽힌다. 미궁은 심연이며 어둠이로되, 스스로 거기 뛰어든 젊은 영웅이 승리를 쟁취하는 전장(戰場)이 된다. 미노타우로스는 제 잘못 때문에 태어난 생명이 아니다. 하필 소의 머리를 한 미노타우로스가 고대 야성의 이미지를 모조리 뒤집어썼으니 측은하다.

머리는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인간의 뇌는 고릴라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보다 3.5배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뇌의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20~25%를 사용한다. 각성된 뇌의 대사량은 전신 대사량의 15%에 이르고, 신경계를 뺀 조직의 평균대사량에 비하면 7.5배나 된다. 뇌가 소비하는 포도당은 하루 평균 120g이다. 몸 전체에서 소비하는 양의 20%에 해당한다. 때로는 50%를 넘는다.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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