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위탕(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에 이렇게 썼다. "중국 사람은 그 현묘한 창자로 생각한다. 중국의 학자들은 '만복의 사상' '만복의 학식' '만강의 애상' '만강의 분노' '만강의 회한' '만강의 분만' 혹은 '만강의 사모'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중략) 중국인에게는 과학적 증명이 소용없다. 중국인은 그저 배로써 느끼는 것이다. (중략) 중국의 학자가 논문이나 연설을 위하여 자기 사상을 정리하여 그것을 아직 지상에 발표하기 전에는 '복안이 되어 있다'는 말을 쓴다. 그 사상은 즉 뱃속에 정리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선비의 식탐을 곱게 보지 않는다. 음식을 탐하는 태도 자체를 점잖지 못하다고 본다. 위가 비어야 머리에 글자가 들어온다는 속설도 있다. 칼 마르크스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마르크스는 청년 시절에 시를 쓰기도 했는데, 오래전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왔다. 시집의 제목은 <젊은 마르크스의 시>다. 시집을 낸 출판사는 '풍경'이다. 소설가 정찬주 선생이 고향인 화순으로 귀향하기 전에 운영하던 곳이다. 정 선생이 하루는 "좋은 원고를 구했다. 청년 마르크스가 쓴 시야. 자네도 한번 읽어봐"라고 권해 책이 나오기 전에 읽어 보았다.
정찬주 선생은 "그 중에 이런 것도 있어"라며 외워 둔 시를 읊어준 다음 '낄낄' 웃었다. 정 선생이 이렇게 웃은 경우는 딱 두 번이다. 한번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번역한 책을 읽은 다음이다. '야생오리의 야성적인 울음소리'라는 대목을 읽고 그렇게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였으리라. S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꿔 낸 이 책은 역대 <월든> 번역 가운데 최악으로 분류된다. 마르크스의 시를 읽은 다음에 웃은 웃음은 야생오리 때와는 달랐다. 선생의 말을 듣자마자 나도 웃고 말았다. 결코 가벼운 '낄낄'은 아니었다.
저녁식사를 너무 많이 하는 자는
밤중에 꿈으로 신음하게 된다.
-의학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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