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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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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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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양대 교수가 2014년에 펴낸 '새 문화사전'(글항아리)은 새와 관련한 옛 문헌과 회화, 고전문학을 망라한 인문서적이다. 정 교수는 새 서른여섯 종을 관찰하고 조류학적, 문학적 의미를 짚어 인문학적 함의를 풀어냈다. 새를 소재로 글을 쓴다면 이렇게 해야겠구나 싶은,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뻐꾸기도 등장한다. 울음소리를 소재로 풀어내려간 대목이 재미있다. 새 울음은 듣기에 따라 달리 들리는데 옛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던가. 그들은 '떡국 떡국', '풀국 풀국', '박국 박국'으로 들었다. 농부에게 씨를 뿌리라 재촉하는 소리로도 들었다. '법금 법금(法禁 法禁)'이라 하여 법으로 금한다는 소리로도, 망국의 시대에는 나라를 찾자는 '복국 복국(復國 復國)'으로도 들었다.

 요즘 뻐꾸기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제가 낳은 알을 품지 않고 얌체처럼 남의 둥지에 낳아 다른 새로 하여금 품어 기르게 하는 탁란(托卵)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방송에서 초고화질 화면으로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자주 뻐꾸기의 생태를 관찰하여 방영하였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대개 이 새를 밉살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알에서 먼저 깬 뻐꾸기 새끼가 둥지 안에 있는 알들을 모조리 밖으로 밀어내고 오목눈이 같은 어미새가 물어오는 먹이를 독차지하는 장면을 보고 기겁한다. 이런 생태는 제 자리가 아닌 곳, 제 몫이 아닌 일을 독차지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우리 현실 속의 부조리를 떠올리게 하기에 시청자가 감정이입할 것이다.
 나는 뻐꾸기가 언젠가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종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고등동물이 우세한 종이 되려면 '스킨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적당한 곳에 알을 낳고 환경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빌어 부화하는 난생동물은 우세한 종이 되기 어렵다. 생물의 자기 보존 방식은 자손을 많이 낳아 생존확률을 높이거나 적게 낳되 공을 들이는 방식으로 나뉜다. 전자를 r전략, 후자를 K전략이라고 한다. r전략의 극단적인 사례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이고 K전략의 최고봉은 인간이다. 이러한 전략은 사람이 만든 조직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기업이나 단체를 관찰하면 사람이 도구요 소모품인 곳과 사람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기는 곳으로 구분된다. 전자가 경쟁을 통해 엘리트를 가려내는 능률적인 조직처럼 보이지만 이런 기업이나 단체는 오래 가지 않는다.

 새가 알을 품는 행위를 포란(抱卵)이라고 한다. '품다'는 '(사람이나 짐승이 사물을) 품속이나 가슴에 대어 안다', '(사람이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마음속에 가지다'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나누고 확인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뛰어난 사랑꾼 마르크 샤갈은 그토록 절절한 포옹의 순간을 그려 사랑하는 아내 벨라 로센펠트를 가슴 속에 영원히 품었을 것이다. 2012년에 나온 책 '아들에게 보내는 갈채'(책숲)에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가 쓴 글이 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이해하고 품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품는다는 것이겠고, 아픔을 품는다는 것은 아마도 그 아픔을 함께 느낀다는 것을 말하겠지. 아픔을 함께 느끼는 사람, 공감하는 사람, 그래서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 그래, 바로 그것인가보다, 함께 비를 맞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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