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대란 발생 초기 수출업체들은 바이어의 신뢰 훼손을 크게 걱정했다. 한진해운에 수출화물을 실은 중소화주들은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급히 물품을 재생산해 항공편으로 보냈다. 하역비에 추가 비용까지 들었다. 몇몇은 부도위기까지 내몰렸다. 현실이 이런데도 '한진해운 사태는 끝났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부와 한진해운이'네 탓'공방을 하는 동안 화주들의 가슴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정부는 위기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내외 시장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리스크 요인을 치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위기가 가시화하면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컨트롤타워가 신속하게 가동돼야 한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국제 해운시장 일각에서 '더 이상 한국 선박에 화물을 맡길 수 없는 것 아니냐'하는 소리가 나온다. 메이저 해운기업들의 가격 후려치기로 고전 중인 우리 국적선사들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국내 화주들이라도 국적선사를 많이 이용해야 할 텐데 시장에서 형성되는 운임을 외면하고 애국심만 강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부가 나서 국적선사를 이용하는 국내 화주에게 항만 이용료 할인 같은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한서(漢書)' '곽광전편'을 보면 '곡돌사신(曲突徙薪)'의 유래가 나온다. 길 가던 나그네가 어떤 집을 보니 굴뚝은 반듯하게 뚫려 있고 곁에는 땔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굴뚝의 구멍을 구부리고 땔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기십시오"라고 조언했지만 주인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집에 큰 불이 나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이 힘을 합쳐 집 주인을 구하고 집도 다 타기 전에 불길을 잡았다. 주인은 감사의 표시로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과 술을 극진히 대접했다. 그때 한 사람이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그네의 말을 들었더라면 불이 날 일도 없었거니와 이렇게 술과 고기를 낭비할 필요도 없을 것이오. 정작 조언을 해준 나그네에게는 보상이 가지 못하고 머리 그슬리고 이마를 데며 불을 끈 사람은 상객이 되었군요."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무역정책지원본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