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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드라마 마더, 그리고 빅토리아 클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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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지금 뭘 안다고들 저한테 이러세요?" 최근 방영중인 드라마 '마더'에서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된 혜나의 친모 자영은 악을 쓰며 소리친다. 야구공에 맞아 고막이 파열된 채 쓰레기봉지에 갇혀 버려졌던 8살 혜나를 지켜본 시청자들을 분노케 하는 장면이다. 또래 아이를 둔 지인은 이 드라마가 불편해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것이 현실임을 알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면 28세가 됐을, 한 영국소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싶다. 이모할머니와 동거남의 학대 끝에 2000년 2월 사망한 빅토리아 클림비(8). 그의 죽음은 영국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영양실조 상태였던 시신에는 무려 128개의 상처가 남겨져있었다. 담뱃불ㆍ밧줄 자국, 자전거 체인과 망치로 얻어맞은 흔적이 곳곳에 가득했다.
클림비의 죽음 이후 영국에서는 곧바로 의회 조사단이 구성됐다. 2년여에 걸쳐 380만파운드를 투입, 사건을 정밀하게 복기했고 이를 근거로 아동보호체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졌다. 이웃도, 복지단체도, 병원도, 신고를 받은 경찰조차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 때 발간된 400쪽가량의 보고서가 바로 아동보호프로그램의 바이블로 불리는 '클림비 보고서'다.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는 없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아동학대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막으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때가 되면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고,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고, 모두들 잊는 악순환. 이 와중에 관련 예산은 되레 줄어드는 추세다.

3개월 이상 욕실에 갇혀 락스세례 등 학대를 받다 숨진 신원영 군의 이야기가 모두를 경악케 한 게 2년전 이맘때다. "살아만 돌아오라"고 기도했던 고준희 양은 아버지에게 암매장된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2014~2016년 학대로 사망한 '공식' 아동의 수는 66명에 달한다.
클림비 보고서가 더 화제가 된 것은 클림비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적어도 12번 있었다는 사실때문이었다. 또한 같은 지역에서 불과 몇년 지나지 않아 발생한 베이비P 사망 사건은 예산투입만으론 아동보호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가족 일이니 신경끄시죠." "그냥 넘어진거에요."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우리의 묵인과 무관심 속에서 이 아이들을 살릴 기회는 과연 몇 번이나 지나갔을까.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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