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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녹조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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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아! 그 물은 마시면 안 되는데…."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K의원은 그 얘기를 듣지 못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유리컵에 놓인 물을 삼켰다. 순간 정적이 흐른 것처럼 고요했다. 동료 의원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04년 10월 국정감사 현장에서 벌어진 장면. 이른바 '녹조라테' 사건으로 알려진 그 날의 사연은 이랬다. P의원은 국감에서 강원도 도암댐 수질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다. 의원들의 책상 앞에 유리컵을 올려놓은 이유였다.
당시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은 더러운 물이니 마시지 말라고 의원들에게 사전 경고했다. 하지만 K의원은 때마침 그때 자리를 비웠다. 뒤늦게 나타난 K의원은 말릴 겨를도 없이 그 물을 마셔버렸다. 녹색의 빛깔에 부유물도 떠 있어서 녹차로 알았다는 후문이다.

[초동여담] 녹조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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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원은 1930년대 태어난 원로 정치인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이지만, 그날의 경험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K의원은 P의원의 추가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쥐가 이 물을 먹고 죽을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다." K의원은 그 얘기에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동료 의원들은 안쓰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P의원은 까마득한 정치선배인 K의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굴욕감을 안겨줬다. 덕분에 K의원은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K의원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됐다. 하지만 그가 남긴 사연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K의원의 황당 사연이 모처럼 생각난 까닭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근 경험한 사건 때문이다. "총리님, 오늘 아침에 뜬 싱싱한 녹조라테입니다."

이 총리는 지난 21일 낙동강 식수원 문제를 살펴보고자 강정고령보를 방문했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투명 플라스틱 컵 속에 담긴 녹색의 액체를 전했다.

"원래 녹즙을 좋아하긴 했는데 오늘은 좀 많이 마시고 와서…." 이 총리는 정중히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마시라고 전달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녹조의 심각성을 전하기 위한 환경단체의 퍼포먼스였다.

실제로 강물은 이미 녹조 비상이다. 가뭄과 폭염이 맞물리면서 더욱 심해졌다. 녹조류는 발진, 구토, 두통, 설사, 고열 등을 유발하는 독소를 함유하고 있다. 정부는 정수처리를 통해 수돗물 독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냄새 물질'은 완벽한 제거가 어렵다기에 그렇다. 수돗물에서 불쾌한 곰팡냄새나 흙냄새를 경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찜찜하기만 하다.

이럴 때 시원스런 장맛비라도 한동안 내려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잔뜩 찌푸린 하늘에 기대를 걸어보았건만…. 무심하게도 '찔끔 빗줄기'를 안기더니 맑게 갠 하늘을 빼꼼히 내밀고 있다.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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