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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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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라인홀트 한닝은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근무했다. 그의 진술대로라면, 그는 상부의 지시를 따라 경비 업무만 수행했다.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달리 업무를 회피할 방법은 없었다고 했다.

70여년이 흘러 한닝은 지난해 94세의 나이로 법정에 섰다. 한닝은 법정에서 "진정으로 미안하다. 불의가 저질러지는 것을 방관하고, 이를 멈추기 위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여생을 보낼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였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는 사과했다. 또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일하긴 했지만 학살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독일 법원의 판단은 5년의 징역형이었다. "피고인은 2년 반동안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가스실에서 죽어가는지를." 판사는 '방조'에 대해 단죄했다.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범죄 재발 방지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고, 국가라는 이름 아래 발현된 악마성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결연함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이런 원칙이 퇴색돼 빚어지는 참담함을 목도하고 있다. 한닝이 방조자였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기획자이자 책임자였다. 그는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한닝처럼 뒤늦게라도 사과를 하기는커녕 최근 '회고록'을 통해 5ㆍ18을 '폭동'으로 표현했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 떳떳하기만 하고, 여전히 죄를 짓고 있다.
상처를 덮기 전에 세균을 박멸해야 온전한 새살이 돋아날 수 있다. 아연실색케했던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난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대선 정국에서 벌써 용서와 화합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국정농단 사태를 거세게 비판하며 당을 박차고 나왔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다시 돌아가려 한다. 적폐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세우는 화합은 판에 박힌 수사일 뿐, 미래를 위한 단어가 아니다.

이번 참에 정치 문화에서도 마지노선 이하는 털어버리고 가면 좋겠다. 예를 들어 돼지발정제 수준의 단어들이 일국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 과정에서 이슈가 되는, 아이들 보기 부끄러운 저열함도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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